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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영화 리뷰 (바비랜드, 정체성, 미장센)




바비 영화 2023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4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분홍색 인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인형 마케팅 영화겠거니 했는데, 직접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웠기 때문입니다.

바비랜드라는 완벽한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오마주(Homage)가 등장합니다. 오마주란 특정 작품이나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유사한 장면이나 기법을 의도적으로 차용하는 연출 방식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부를 그대로 패러디하며 거대 바비 인형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그 대담한 선언 앞에서 평론가로서 전율이 왔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바비랜드의 미장센(Mise-en-scène)은 그 자체로 논문을 써도 될 만큼 치밀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 조명, 의상, 배우의 동선까지 포함하는 영화의 공간 연출을 가리킵니다. 이 영화에서 바비랜드의 인공적인 색감, 납작하게 눌린 듯한 원근감, 하늘과 집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질감은 이 공간이 철저히 '만들어진 세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가 갑자기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화면의 분위기가 살짝 흔들립니다. 완벽한 세계의 첫 균열이죠.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감탄한 장면은 바비가 LA 벤치에 앉아 노인 여성을 바라보며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바비랜드에서는 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주름진 얼굴 앞에서 바비가 느끼는 경이로움은, 외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이 영화의 가장 조용한 정점이었습니다. 화려한 뮤지컬 시퀀스들 사이에 이런 장면을 끼워 넣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감각이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 그 영리함과 한계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정체성(Identity)의 탐색입니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자기 인식의 총체로,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내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됩니다. 바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질문을 들고 달립니다. 물론 영화 안에 페미니즘적 시선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모순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이 영화의 종착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의 독백 시퀀스는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장면에서 주변 관객들의 숨소리가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여성이 살아가면서 내면화하는 모순된 기대들을 나열하는 이 독백은 분명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평론가적 시선으로 보면,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보다는 관객에게 주제를 직접 선언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기보다 잠시 영화를 멈추고 강연하는 느낌을 줍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입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켄의 서사는 예상보다 훨씬 비중이 컸습니다. 켄들끼리 싸우는 장면, 그 안에서 터지는 켄의 노래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시퀀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커질수록 바비의 내면적 성장이 상대적으로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반부에서 영화의 포커스가 분산된다는 인상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그 분산 자체가 의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의 서사가 희미해지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여러 시각이 있습니다. 아래는 영화가 탐색하는 정체성의 단계를 제가 정리한 것입니다.

  1. 완벽하게 설계된 존재로서의 바비: 바비랜드에서 아무런 결핍 없이 살아가는 상태
  2. 결핍의 발생과 현실 세계로의 이탈: 셀룰라이트와 죽음에 대한 인식이 균열의 시작
  3. 현실 세계에서의 충격과 재정의: 성추행, 비판, 마텔 본사의 회수 시도 등 외부 시선과의 충돌
  4. 선택으로서의 인간됨: "만들어진 물건이 아닌, 생각을 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선언

이 네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단순히 여성 권리를 외치는 작품이 아니라, 존재론적 자유 의지를 묻는 작품임이 드러납니다. 실제로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영화를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과 연결해 분석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스스로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IMDb 바비 페이지에서도 이 영화의 주제 키워드로 '자아 발견'이 상위에 올라 있습니다.




미장센이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

그레타 거윅 감독은 시각 언어(Visual Language)를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시각 언어란 대사 없이 색채, 구도, 조명만으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을 뜻합니다. 바비랜드의 강렬한 분홍색이 LA 도심의 회색과 만나는 순간, 두 세계의 충돌이 말 한마디 없이도 전달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색 대비만으로도 이미 영화의 반은 설명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뮤지컬 코미디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분명 기분 전환에 최고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화면은 화려하고, 노래는 귀에 걸리며, 켄의 퍼포먼스는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줍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의 껍질을 한 꺼풀 벗기면, 꽤 불편한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비를 만든 마텔 사가 이 영화에 공동 제작사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비판이 어느 선에서 멈춰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지점에 대한 시각은 Rotten Tomatoes의 바비 비평 페이지에서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이용해 이토록 전복적인 질문을 블록버스터 스케일로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각자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분홍색 포장지 안에 숨겨놓은 진짜 이야기입니다.

현재 쿠팡플레이에서 스트리밍 중이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한 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켄의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텐데, 그게 이 영화의 두 번째 함정입니다. 즐거운 함정이라는 게 다행이지만요. 혼자 보는 것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보고 나서 정체성과 존재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ik102001/223504194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