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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결핍, 미장센, 스탠스 필드)



킬러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지만, 1995년 개봉한 <레옹>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뤽 베송 감독이 설계한 이 영화의 핵심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두 인물의 내면적 결핍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킬러물이니까 액션이 주겠지' 하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감정이 흔들렸습니다.

결핍 — 완벽한 킬러가 왜 우유를 마시는가

일반적으로 킬러 캐릭터는 냉혹하고 무감각한 존재로 그려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레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레옹(장 르노)은 신출귀몰하게 목표를 제거하는 프리랜서 킬러이면서도, 매일 우유를 마시고 화분의 잎을 손수 닦는 루틴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 화분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레옹의 분신입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디서든 이동해야 하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오브제(objet)입니다. 오브제란 예술 작품이나 영상에서 상징적 의미를 담아 배치하는 사물을 뜻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레옹이 마틸다에게 글을 배우는 장면이었습니다. 거대한 몸집에 완벽한 살인 기술을 가진 남자가 열두 살 소녀에게 글씨를 배우는 구도는 단순히 귀엽거나 웃기려고 설정한 게 아닙니다. 레옹은 신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장이 멈춰버린 존재, 즉 영화 비평 용어로 말하면 '프시케 지체(psychic stasis)'에 해당하는 캐릭터입니다. 프시케 지체란 외부적 충격이나 환경으로 인해 심리적 성숙이 중단된 상태를 뜻합니다.

반면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는 열두 살이지만 방치된 가정환경 속에서 감정적으로 과숙(過熟)해버린 인물입니다. 과숙이란 나이에 비해 감정과 경험이 지나치게 빨리 성숙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생겨나는 에너지가 단순한 '유사 부녀 관계'의 온기를 넘어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왜 이 영화가 도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당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고,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개봉 후 그녀가 학교에서 질투와 질시를 받고, 팬 레터에 성적 내용이 담겨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영화의 서사와 현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입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그녀의 커리어는 레옹 이후 30년에 걸쳐 성장했습니다.

미장센 — 뤽 베송이 도덕 대신 선택한 것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하며, 영화에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구도, 배우의 움직임, 소품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뤽 베송은 <레옹>에서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도덕적 잣대로 해석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고립된 두 존재가 서로에게 어떤 방파제가 되어주는가를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입니다.

레옹이 착용하는 선글라스와 모자는 단순한 패션 소품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방어막으로 기능합니다. 마틸다와 가까워지면서 레옹이 그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이 늘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뤽 베송은 이런 시각적 언어를 통해 대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저는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야 이런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는데, 처음 볼 때는 액션 장면에 정신이 팔려서 전혀 몰랐습니다.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에 대해 로저 이버트의 원문 리뷰(RogerEbert.com)에서도 "베송은 이 불편한 관계를 스타일로 정당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다만 스타일이 내용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레옹의 액션 연출 방식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레옹이 건물에 침투하거나 표적을 제거하는 장면에서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액션과 달리 과장된 폭발이나 슬로모션보다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압축하는 방식을 씁니다. 이를 영화 용어로 '긴장 편집(tension cutting)'이라 부르며, 이는 관객이 킬러의 시점에서 숨죽이며 상황을 따라가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덕분에 레옹의 액션은 화려하기보다 섬뜩하고, 그게 오히려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스탠스 필드 — 악의 탐미주의가 영화를 살렸다

만약 이 영화에서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레옹>은 그저 그런 감성 액션극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제가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로 봤을 때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한 부분입니다. 게리 올드만의 스탠스 필드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약을 삼키고, 리듬에 맞춰 부하를 다루는 그의 모습은 '악의 탐미주의(aestheticism of evil)'를 체현한 캐릭터입니다. 악의 탐미주의란 악한 행위 자체를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출 전략입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종종 "너무 과하다(overacting)"는 지적과 "천재적이다"는 찬사 사이를 오갑니다. 오버액팅(overacting)이란 배우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표현하는 연기 방식을 뜻합니다. 저는 스탠스 필드만큼은 오버액팅이 오히려 정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부 마약단속국 소속이면서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 절제된 연기로 그려졌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공권력의 부패가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짓밟는가는 이 영화의 핵심 갈등 구조이기도 합니다. IMDb의 레옹 페이지(IMDb)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더 긴 감독판으로 상영되었고, 두 버전 간의 편집 차이도 스탠스 필드의 비중과 연관이 있습니다. 감독판에는 마틸다와 레옹의 관계가 더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극장판과는 인상이 꽤 달라집니다.

레옹을 보면서 제가 가장 소리 내어 웃었던 장면은 마약 조직 두목이 경찰에 직접 전화를 걸어 신고하는 초반부였는데, 이 장면이 단순한 유머 코드가 아니라 스탠스 필드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장치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레옹이 직접 처리해달라고 조직 두목이 경찰에 달려가는 역설적 상황 자체가,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킬러보다 공권력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스탠스 필드를 중심으로 이 영화의 구조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스탠스 필드는 법무부 마약단속국 요원이라는 공권력의 외피를 두르고 있어, 마틸다의 가족을 몰살시켜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2. 레옹은 킬러이지만 오히려 이 영화에서 약자를 지키는 유일한 존재로 기능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3. 스탠스의 과잉된 퍼포먼스는 부패한 권력의 자기도취적 속성을 시각화하며, 결말에서의 레옹의 희생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듭니다.

레옹이 마틸다에게 남긴 명대사 "네 덕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 이제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는 결말을 알고 나면 더 가슴을 내리칩니다. 뿌리를 내리겠다고 말한 직후 그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틸다가 레옹의 화분을 땅에 옮겨 심는 행위는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을 마틸다가 대신 완성해주는 의식입니다. 이 엔딩을 처음 봤을 때 저는 한동안 멍하게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끝나야 맞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오히려 더 슬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