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 마블 영화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솔직히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로는 극장 발걸음이 뜸해졌는데, <데드풀과 울버린>만큼은 달랐습니다. 엑스맨 팬으로서 20년을 버텨온 입장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라 하나의 팬덤 헌정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관객에게 그랬을까요. 그 지점이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MCU 편입과 R등급
이 영화가 갖는 역사적 위치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가 보유하던 엑스맨 지식재산권(IP)이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 MCU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즉 마블이 직접 제작·배급하는 공식 세계관 안에 처음으로 편입된 엑스맨 캐릭터 영화입니다. 그것도 MCU 사상 최초의 R등급(미국 기준 17세 이상 관람가)으로요.
R등급이란 성인 보호자 동반 없이는 17세 미만 관람이 제한되는 등급으로, 노골적인 폭력·언어·성적 표현이 포함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디즈니라는 기업이 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체감한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오프닝에서 엔싱크(NSYNC)의 'Bye Bye Bye'가 흘러나오는 순간, 좌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뒷좌석에서는 "이거 진짜 마블 맞아?"라는 소리까지 들렸으니까요.
MCU 페이즈 5(Phase 5)란 마블이 설정한 영화·드라마 출시 계획의 다섯 번째 챕터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그 네 번째 작품으로 위치합니다. 그리고 2024년 마블이 내놓은 유일한 극장 영화이기도 합니다. 흥행 부진이 반복되던 마블 입장에서는 사실상 이 한 편에 연간 흥행 전략을 모두 걸었다고 봐야 합니다.
영화 안에서 데드풀이 "나는 마블의 구세주야"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그냥 캐릭터의 허풍이 아니라 현실 비즈니스를 향한 메타 유머(meta humor), 즉 작품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비트는 자기지시적 유머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팬서비스의 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팬서비스를 기대하긴 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설계한 팬서비스의 밀도와 정교함은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이스터 에그(Easter egg)란 영화·게임 등에서 제작진이 팬들을 위해 숨겨둔 의도적 참조나 상징을 가리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스터 에그 수준을 넘어, 폭스 마블(Fox Marvel), 즉 20세기 폭스가 제작한 엑스맨·데드풀·블레이드·판타스틱 4·엘렉트라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캐릭터들을 본편의 서사 안에 직접 끌어들였습니다. 카메오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으로요.
저를 가장 강하게 타격한 순간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울버린의 풀 코스튬, 그러니까 원작 만화에서 울버린이 입는 노란색과 파란색 슈트가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실사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입니다. 20년 동안 엑스맨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는데, 소름이 돋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로건(Logan, 2017)>의 딸이었던 로라(다프네 킨)가, 그때 그 선글라스를 그대로 쓰고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부 소품 하나까지 기억하고 설계한 제작진의 의도가 느껴져서, 그냥 팬으로서 고마웠습니다.
이런 팬서비스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크로스오버(crossover), 즉 서로 다른 시리즈나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역대 마블 영화 중 가장 많은 폭스 크로스오버 캐릭터를 한꺼번에 투입했습니다. 아래는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폭스 마블 캐릭터들입니다.
- 울버린(로건) — 휴 잭맨, 엑스맨 시리즈 전편의 주축 캐릭터
- 로라(X-23) — 다프네 킨, <로건(2017)>에서 울버린의 딸로 등장한 캐릭터
- 엘렉트라 — <데어데블(2003)>, <엘렉트라(2005)>의 주인공
- 블레이드 — <블레이드(1998~2004)> 시리즈의 뱀파이어 헌터
- 판타스틱 4 멤버 — <판타스틱 4(2005~2007)> 시리즈의 캐릭터 일부
이 구성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이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총동원해 대성공을 거뒀던 전략과 정확히 같은 방향입니다. 마블이 같은 공식을 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진입장벽의 두 얼굴
그런데 여기서 제 안에도 두 가지 시각이 충돌합니다. 팬으로서는 더없이 행복한 영화인데, 비평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독립 작품으로서의 서사 완성도를 과감히 포기했다고 보입니다.
TVA(Time Variance Authority)란 <로키> 드라마 시리즈에서 등장한 시간선 관리 조직으로, 무수히 많은 평행 세계의 시간 흐름을 통제하는 초월적 기관입니다. 보이드(Void)는 그 TVA가 폐기한 시간선 속 존재들이 던져지는 공간입니다. 이 설정들이 <데드풀과 울버린>의 핵심 무대로 사용되는데,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로키>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설명 없이 등장하는 배경이니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메인 빌런인 카산드라 노바(Cassandra Nova)의 경우, 배우 엠마 코린의 연기 자체는 날카롭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가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전형적 악당'의 틀 안으로 좁혀지면서, 초반에 풍겼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합니다. 빌런 서사의 이런 소진은 MCU 영화들이 반복해온 고질적 약점이기도 한데, 이번에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인상이었습니다.
멀티버스(Multiverse)란 하나의 우주가 아닌 무한히 많은 평행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현재 MCU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설정입니다. 이 멀티버스를 도구 삼아 과거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소환하는 방식은 영리하지만, 동시에 서사보다 이스터 에그가 먼저인 영화처럼 보이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아는 사람만 즐거운 축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화 흥행 지표를 보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개봉 초기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억 달러를 돌파하는 오프닝을 기록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그러나 이 수치가 마블 전반의 부진을 반전시켰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 편의 흥행이 브랜드 전체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마블의 전망,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결국 어떤 기준으로 마블 영화를 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팬덤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을 영화의 목적으로 본다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근래 MCU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반대로 독립 서사의 완성도, 새로운 관객을 끌어안는 포용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블의 전략이 앞으로도 이 방향을 유지할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관 구축에 힘을 실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공식 향후 라인업에 대한 최신 정보는 마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출처: Marvel Official) 제 경험상 마블 영화는 사전 정보와 기대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갈리는 시리즈입니다. <데드풀과 울버린>도 마찬가지입니다.
엑스맨 팬이라면 극장에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반면 MCU를 가볍게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최소한 <로건>과 <판타스틱 4>를 미리 보고 가시는 걸 권합니다. 그래야 이 영화가 설계한 감동의 절반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