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불을 다 끄고 혼자 영화를 보다가 손에 땀이 맺힌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1917>을 처음 틀었을 때 딱 그 상태가 됐습니다. 전쟁 영화니까 전투 장면이 많겠지 하고 편하게 앉았는데, 119분 내내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1917>
원테이크 연출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처음에는 원테이크(One-take)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좋은 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면이 바뀌지 않는 겁니다. 보통 영화는 컷(Cut), 즉 카메라가 전환되는 편집 단위를 통해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입니다. 그런데 <1917>은 그 컷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1917>
정확히는 원 컨티뉴어스 쇼트(One Continuous Shot)라는 기법입니다. 단 하나의 카메라가 끊김 없이 촬영한 것처럼 보이게 설계한 연출 방식입니다. 실제로는 여러 번 촬영했지만, 편집점을 완벽하게 숨겨 관객이 느끼는 시간과 화면 속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샘 멘데스 감독이 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관객이 전령과 함께 그 길을 직접 걷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법을 완성시킨 것은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Roger Deakins)입니다. 로저 디킨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으로 잘 알려진 영화계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한 명으로, <1917>로 두 번째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설계한 카메라 동선은 참호에서 황무지, 폐허 도시, 강까지 이어지는 모든 공간을 하나의 연속된 길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 중 카메라가 이렇게 인물의 호흡과 정확히 맞물려 움직이는 영화는 <1917>이 유일했습니다.1917>1917>
롱테이크가 만들어내는 압박감의 원리
롱테이크(Long Take)란 카메라를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일반 영화의 평균 컷 길이가 4~6초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수분 이상 카메라가 끊기지 않는 롱테이크는 시각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관객에게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컷이 전환될 때마다 잠깐씩 긴장을 풀고 다음 장면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롱테이크는 그 여백을 제거합니다. 주인공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가 진흙탕에 넘어지면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고, 그가 숨을 몰아쉬면 저도 숨이 얕아졌습니다. 이게 롱테이크가 만드는 미장센(Mise-en-scène)의 힘입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담긴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배경, 카메라 움직임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구성하는 연출 개념입니다.
특히 불타는 교회를 배경으로 조명탄이 쏘아 올려지는 밤 시퀀스는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장면입니다. 조명탄은 터질 때마다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스코필드는 그 빛과 어둠 사이를 헤집고 달립니다.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발소리와 잔해 부서지는 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 저는 거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1917>이 이 기법으로 거둔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편집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는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출처: BAFTA 공식 사이트). 기술적 혁신이 예술적 완성도로 이어진 드문 사례입니다.1917>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세 가지 설계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였습니다. 롱테이크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몰입감을 만드는 구조가 따로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입니다.
- 데드라인(Deadline) 설계: 영화는 시작부터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1,600명에게 명령을 전달해야 한다"는 조건을 겁니다. 데드라인이란 어떤 행동이 유효한 마지막 시한을 뜻하며, 이 영화에서는 시계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아도 인물의 걸음 속도와 카메라의 움직임 자체가 시간의 압박을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 공간 설계의 일관성: 참호에서 시작해 황무지, 폐허 도시, 강, 숲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방향과 거리감이 명확합니다. 광각(Wide Angle)에 가까운 렌즈를 사용해 인물과 배경을 동시에 프레임에 담았기 때문에, 관객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지금 어디쯤 왔는지 몸으로 이해합니다. 광각 렌즈란 넓은 범위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렌즈로, 공간의 깊이와 거리감을 강조하는 데 쓰입니다.
- 캐릭터의 인간성: 스코필드가 전장에서 만난 프랑스 여인과 아기에게 자신의 우유를 건네는 장면은 상영 시간 119분 안에서 가장 짧은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몇 초가 이 영화 전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 멈춰서 아기를 달래는 그 순간이, 스코필드라는 인물을 "임무 수행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께는 특히 두 번째 포인트에 집중해 보시길 권합니다. 공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의식하며 보면 롱테이크 연출의 정교함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 동선 설계가 얼마나 치밀한지 실감했습니다.
이 영화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가끔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경험을 줬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 <1917>을 꺼냅니다. 화려한 특수효과가 가득한 블록버스터를 보고 나서 오히려 허무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가능성이 큽니다.1917>
샘 멘데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령으로 복무했던 자신의 외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Alfred Mendes)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사 기록에 남지 않는 이름들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걸었는지, 그 익명의 발걸음에 품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Western Front)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프랑스와 벨기에 일대에 걸쳐 형성된 교착 전선으로, 수백만 명의 병사가 참호전 속에서 목숨을 잃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터 중 하나입니다(출처: 영국 임페리얼 전쟁박물관(IWM)). 이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영화의 무게가 한층 달라집니다.
전쟁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도 <1917>은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되, 그 안에서 인간이 서로를 지키려는 의지를 더 크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런 질문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1917>
거실 조명을 끄고, 가능하면 이어폰이나 스피커 볼륨을 조금 높여서 보시길 권합니다. 토마스 뉴먼의 오케스트라 스코어(Score), 즉 영화 장면에 맞춰 작곡된 배경음악은 대사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특히 마지막 질주 장면에서 음악이 어떻게 쌓이는지 느껴보시면, 제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오래 기억하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1917>은 단순히 잘 만든 전쟁 영화가 아니라, 시네마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직접 보여준 작품입니다.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