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부 개봉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선보인 킬 빌 2부는, 타란티노 감독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두 편으로 쪼갠 두 번째 절반입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1부의 그 속도감을 기대했다가 초반 30분에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미장센이 전부 다른 영화처럼 바뀐 이유
1부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 편은 도쿄의 네온사인, 화려한 원색, 오렌지와 붉은 피가 대비되는 강렬한 색감으로 눈을 압도하는 작품이었습니다. 2부는 그 반대입니다. 텍사스 사막의 먼지, 낡아빠진 트레일러, 흙빛 하늘. 1부가 홍콩 무협 영화에 대한 오마주(Hommage)였다면, 2부는 이탈리안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에 가깝습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1960~70년대 이탈리아 감독들이 미국 서부극 장르를 재해석해 만든 영화 사조를 뜻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그 건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2부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핵심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색감, 소품 등을 통해 감독이 의도한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기법을 말합니다. 1부의 화려함과 2부의 황량함은 단순한 스타일 차이가 아니라, 이야기의 온도 차이입니다. 1부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 분)가 분노로 달려가는 존재였다면, 2부의 그녀는 상처를 끌어안고 걷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 무게감을 미장센이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2부가 1부보다 지루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느린 호흡이 더 오래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속도감 있는 액션이 장르 영화의 미덕이라고들 하지만, 제 경험상 2부처럼 대사와 침묵으로 긴장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 훨씬 더 오래 머릿속에 맴돕니다. 관짝 속에 갇혀 어둠 속에서 혼자 버티는 그 장면, 소리 하나 없이 카메라가 그냥 거기 있을 때 느껴지던 그 압박감은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 무서웠습니다.
파이 메이, 그리고 B급 무협의 진심 어린 오마주
2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단연 파이 메이(Pai Mei) 수련 장면입니다. 백발에 수염을 길게 기른 이 노인, 유가휘 배우가 연기한 파이 메이는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타란티노는 여기서 쇼브라더스(Shaw Brothers)의 고전 홍콩 무협 영화 특유의 연출 방식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쇼브라더스란 1950년대부터 홍콩 영화 산업을 주도한 제작사로, 과장된 음향 효과와 빠른 줌 인(Zoom-in), 강렬한 원색 의상이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줌 인(Zoom-in)이란 카메라 렌즈의 초점 거리를 늘려 피사체를 빠르게 당겨 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요즘 영화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방식이라 오히려 더 레트로한 질감이 살아납니다. 파이 메이가 브라이드를 무시하며 밥을 먹는 첫 장면에서 탁 하고 들어오는 줌 인, 그리고 과장된 효과음 조합은 웃기면서도 이 장면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는지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타란티노가 단순히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장르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수련 장면이 단순한 회상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오병장파심맥타(五步掌破心脈打) 때문입니다. 오병장파심맥타란 다섯 걸음 안에 심장을 멎게 만드는 무공으로, 파이 메이가 세상에 단 한 명에게만 전수한 금지된 초식입니다. 이 설정 하나가 엔딩의 무게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빌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총 한 방 없이 조용히 그의 가슴을 건드리는 그 순간, 관객은 파이 메이 챕터를 떠올리며 소름이 돋습니다. 복선과 회수가 이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참고로 타란티노 감독이 쇼브라더스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여러 영화 연구에서 분석된 바 있습니다. 출처: The Criterion Collection에서도 킬 빌 시리즈에 담긴 장르적 참조를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오병장파심맥타 엔딩이 복수극이 아닌 이유
킬 빌 시리즈를 복수극으로 부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2부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단순한 복수극이라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2부의 엔딩은 잔인한 승리가 아니라 무너지는 상실감에 가깝습니다. 빌(데이비드 캐러딘 분)은 죽기 직전까지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 일방적인 악당이 아니라 뒤틀린 방식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죽인 뒤 더 브라이드는 욕실 바닥에서 혼자 울면서 웃습니다. 그 장면이 저에게는 복수의 쾌감이 아니라 텅 빈 감정으로 읽혔습니다.
2부가 걸작으로 평가받는 요소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스파게티 웨스턴 미학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건조한 미장센, 특히 공동묘지 생매장 시퀀스의 폐쇄적 카메라 워킹이 만들어내는 극도의 서스펜스
- 파이 메이 챕터에서 쇼브라더스 무협 영화에 대한 정교한 오마주를 통해 오병장파심맥타의 복선을 심어두는 각본의 구조적 치밀함
-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음악이 폭력의 잔혹함과 인물의 슬픔 사이를 이어주며 만들어내는 서정적 비장미
- 빌과 브라이드의 마지막 대화에서 복수극을 넘어 사랑과 소유욕, 그리고 정체성 회복의 서사로 전환되는 결말의 깊이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로, 바로 그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음악 문법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타란티노가 2부에 그의 음악을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장르에 대한 명확한 선언입니다. 음악이 깔리는 순간 장면의 정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 2부에서 여러 번 느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도 여기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관객이 감정을 해소하고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2부의 엔딩이 통쾌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이 카타르시스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부가 분노의 해소라면, 2부는 슬픔의 정화에 가깝습니다. 출처: RogerEbert.com에서도 로저 에버트는 2부를 "감정적으로 훨씬 복잡한 작품"으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1부를 보고 2부를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속도감이 느려졌다고 실망하지 마시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시면 전혀 다른 영화를 보게 됩니다. 반대로 2부부터 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1부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두 편을 연달아 보셨을 때 오병장파심맥타가 완성되는 순간의 무게가 배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늘 그렇지만, 킬 빌만큼 두 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