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은 전편을 넘기 어렵다는 말, 막연하게 동의하면서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저도 2014년 이퀄라이저를 보고 한동안 덴젤 워싱턴의 눈빛 하나에 완전히 압도됐던 터라, 2018년 속편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거실 불을 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선택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속편의 한계, 막연한 믿음과 실제 사이
일반적으로 속편(sequel)이 전편의 흥행을 등에 업고 만들어지는 경우, 서사의 밀도보다 스펙터클의 규모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고들 합니다. 이퀄라이저 2도 처음 그 틀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우려가 그대로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먼저 무너진 선입견은 덴젤 워싱턴의 연기 밀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나이 든 배우가 액션 속편에서 소비된다는 편견과 달리, 그는 로버트 맥콜이라는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다듬어 왔습니다. 카리스마(charisma)란 단순히 강렬한 눈빛이나 몸짓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쌓아온 내면의 무게가 외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맥콜이 운전석에 앉아 손님을 바라보는 장면 하나에서도 그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반면 제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바로 빌런(villain), 즉 악당의 정체입니다. 빌런이란 서사에서 주인공의 신념과 충돌하는 대립 인물을 뜻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 정체가 중반을 넘기기도 전에 상당수 관객에게 읽혔을 것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고, 솔직히 그 순간 긴장의 실이 한 올 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편에서 마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팽팽하게 유지됐던 서스펜스(suspense, 결말을 알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이번에는 조금 일찍 해소됩니다.
그리고 결말부,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 요원 넷이 준비된 맥콜 앞에서 허무하게 각개격파 당하는 장면은, 액션의 쾌감보다는 개연성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레스닉 일행이 정예 팀이라는 설정을 감안하면, 그들의 마지막 행동 방식은 앞서 보여준 치밀함과 온도 차가 있었습니다. 그게 아쉬웠습니다.
참고로 미국영화협회(출처: MPAA)에 따르면 액션 속편 영화의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은 전편 대비 평균 60~80%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퀄라이저 2 역시 전편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덴젤 워싱턴 필모그래피 최초의 속편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멘토링 서사, 예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마일즈(애쉬튼 산더스 분) 이야기를 영화의 부수적인 에피소드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자꾸 떠오르는 장면은 화끈한 허리케인 액션이 아니라, 맥콜이 마일즈에게 책을 건네고 벽을 같이 바라보던 조용한 장면들이었습니다.
멘토링(mentoring)이란 경험 많은 사람이 조언과 지지를 통해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영화 속 맥콜은 마일즈에게 화가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택지를 하나 더 열어줍니다. 그 차이가 교육에 관심 있는 저에게는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에게 방향을 알려주되, 결국 걷는 것은 아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맥콜은 그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감동 코드를 넘어섭니다. 범죄 환경에서 자란 청년에게 선악의 기준을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내적 자원(internal resource)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교육적 함의가 깊습니다. 내적 자원이란 외부 압력 없이도 스스로 동기를 찾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뜻합니다.
맥콜과 마일즈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려는 순간에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것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의 온도를 화면에 담아내는 영화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해냈습니다.
맥콜이 마일즈에게 보여준 멘토로서의 역할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낙서를 지우고 그림을 그리는 조건을 제안하며 청년의 재능에 먼저 다가갑니다.
- 갱단 소굴에 직접 들어가 선택의 기회 자체를 만들어줍니다.
- 화가와 갱단, 두 길을 모두 제시한 뒤 결정권을 온전히 마일즈에게 돌려줍니다.
- 선택 이후에도 곁에 머물며 그 결정을 지지합니다.
이 네 단계는 강요 없는 안내라는 점에서, 흔히 할리우드 영화가 그려내는 일방적인 구원자 서사와 결이 다릅니다. 덴젤 워싱턴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없었다면 이 과정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말수를 줄이고 눈빛과 행동으로 채워냈습니다.
액션 연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솔직하게
일반적으로 허리케인 시퀀스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언급되는데, 저는 여기에 절반쯤 동의합니다. 자연재해를 전술적 배경으로 활용한 발상은 분명히 신선합니다.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해안가 마을, 아무도 없는 거리, 그 안에서 지형과 바람의 방향까지 계산해 움직이는 맥콜의 전술적 사고는 시각적으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촬영감독 올리버 우드가 설계한 이 시퀀스의 미장센은 좁고 어두운 렌터카 내부와 대비해 폭풍 속 광활한 공간을 교차시키면서, 맥콜의 고독과 위협이 동시에 느껴지도록 구성됐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그 대비가 꽤 계산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만 결말 처리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레스닉과 요원들이 맥콜의 고향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들의 움직임이 앞서 보여줬던 정예 요원의 그것과 맞지 않습니다. 마일즈를 인질로 데려간 것도 결과적으로 서사에 긴장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술적 선택으로서의 설득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말의 엉성함은 그 전까지 잘 쌓인 긴장감을 상당 부분 희석시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억눌린 감정이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를 뜻합니다. 좋은 액션 영화의 마무리는 단순히 악당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 순간 주인공과 함께 짐을 내려놓는 감각을 주어야 합니다. 이퀄라이저 2는 그 카타르시스에 80%쯤 도달했다고 저는 봅니다. 파도에 쓸려가는 레스닉의 장면보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맥콜이 수잔의 물건을 정리하는 조용한 장면이 오히려 더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와 캐릭터 분석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영화 분석 자료(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를 참고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퀄라이저 2는 전편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빌런의 정체가 예측 가능하고 결말이 엉성하더라도, 맥콜이 마일즈에게 건넨 조용한 손길과 허리케인 속에서 혼자 버티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속편을 망설이고 계신 분이라면, 전편과 비교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맥콜이라는 인간 자체에 집중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두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