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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2 (언더커버, 실랏, 키친 시퀀스)


레이드 2를 처음 틀었던 날, 솔직히 전편보다 낫겠어? 라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150분이라는 러닝타임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런데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기도 전에 그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전편의 폐쇄적인 빌딩 하나에서 자카르타 전체로 무대가 넓어진 이 영화는,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 장르 자체를 다시 설계한 작품이었습니다.

언더커버 서사가 액션에 무게를 더하는 방식

레이드 2의 가장 큰 도박은 전편의 단순한 구조를 버렸다는 점입니다. 전편은 경찰 특공대원들이 범죄자 가득한 빌딩 한 채를 뚫고 올라가는, 말 그대로 게임의 보스전 구조였습니다. 그 단순함이 강점이었죠. 그런데 2편은 거기서 완전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언더커버(Undercover) 서사란, 수사관이 신분을 숨기고 범죄 조직 내부에 침투하는 잠입 수사 플롯을 뜻합니다. 무간도나 디파티드 같은 영화가 이 구조를 정교하게 다뤄 왔는데, 레이드 2는 여기에 인도네시아 마피아와 일본 야쿠자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라는 변수까지 얹습니다. 주인공 라마가 감옥에서 조직의 신뢰를 쌓고, 출소 후 두 거대 조직의 암투 한가운데서 줄타기를 이어가는 과정은 꽤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구조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지점은, 잠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라마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단순히 가족을 지키겠다는 다짐 하나로 시작한 잠입이, 어느 순간 돌아갈 곳을 잃은 자의 고독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이코 우웨이스가 대사 없이도 이걸 표현해낸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격투 장면이 아니라 그냥 걷는 장면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까요.

서사 구조상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150분의 러닝타임 중 조직 내부의 정치 싸움을 다루는 중반부가 다소 느리게 흘러가는 편입니다. 전편의 타이트한 호흡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중간에 박자가 끊긴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느슨함이 아쉽다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그 호흡이 후반부의 폭발력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보면, 감독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실랏 무술이 스크린에서 설득력을 갖는 이유

레이드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실랏(Silat)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실랏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전한 전통 무술로, 낮은 자세와 빠른 스텝, 관절 꺾기와 타격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중국 무술처럼 점프와 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고, 최단 거리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실용성에 집중합니다.

저는 레이드 1을 보고 나서 실랏을 찾아봤을 정도로 이 무술의 움직임에 매료됐습니다. 2편에서는 그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근거리 그래플링(Grappling), 즉 상대와 밀착해서 관절을 꺾고 체중을 이용해 제압하는 기술과 카람빗(Karambit)이라는 갈고리 모양의 단도를 이용한 근접전이 핵심입니다. 카람빗이란 손가락에 끼워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단도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안무 감독을 겸하는 이코 우웨이스 본인이 실랏을 수련한 무술인이라는 점이 이 장면들의 설득력을 높입니다. CG로 보정한 움직임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만들어내는 궤적이기 때문에, 타격의 타이밍과 무게감이 카메라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무술 액션의 진정성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IMDb 레이드 2 페이지에서 스턴트 크레딧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실제 무술인들로 채워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공간 활용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동선 등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통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레이드 2는 감옥 진흙탕, 달리는 차 안, 주방이라는 세 공간을 각각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설계했습니다. 같은 실랏이라도 좁은 차 안에서 펼쳐질 때와 넓은 주방에서 펼쳐질 때의 밀도가 전혀 다릅니다. 공간이 액션의 언어가 되는 방식입니다.

키친 시퀀스, 숫자로 보는 이 장면의 밀도

클라이맥스인 키친 시퀀스(Kitchen Sequence), 즉 마피아 본거지 주방에서 벌어지는 최후의 격투 장면은 레이드 2를 논할 때 모든 리뷰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하이라이트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이 장면에서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을 정도였습니다.

이 시퀀스의 밀도를 수치로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1. 격투 지속 시간: 단일 격투 시퀀스로 약 10분 이상을 쉬지 않고 이어갑니다. 편집 컷 수를 최소화하여 실제로 싸우는 느낌을 극대화했습니다.
  2. 사용 무기: 카람빗 두 자루만으로 진행되며, 총기나 폭발물 없이 신체와 근접 무기만으로 클라이맥스를 완성합니다.
  3. 상대 인원: 주인공 라마 혼자 수십 명의 조직원과 최후의 암살자를 순차적으로 상대합니다.
  4. 화면 구성: 흰 타일로 가득한 주방의 미니멀한 배경이 붉은 색과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액션 영화의 클라이맥스 시퀀스 설계에 대한 분석 자료를 보면, 관객의 감정적 피로도를 고려한 페이싱(Pacing) 설계가 핵심이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합니다. 페이싱이란 영화의 속도와 리듬을 조절하여 관객이 지치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도록 하는 편집 기술을 뜻합니다. 레이드 2의 키친 시퀀스는 빠른 타격과 짧은 정지를 반복하면서 이 페이싱을 정교하게 제어합니다. (출처: BFI Sight & Sound)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부분의 라마 눈빛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끝낸 뒤 야쿠자 보스와 마주쳐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는 그 순간, 분노도 안도도 아닌 그냥 텅 빈 표정. 그게 어떤 화려한 격투 장면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레이드 2 이후 액션 영화의 지형이 바뀐 지점

레이드 시리즈가 2011년과 2014년에 공개된 이후, 할리우드와 아시아 액션 영화계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는 꽤 광범위하게 나옵니다. 존 윅 시리즈를 비롯해 근접전 중심의 실용적 무술 액션이 주류로 올라선 흐름은 레이드 이후 본격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액션 영화의 스타일을 크게 나눠보면, 원화평 같은 무술감독이 주도한 중국 무협 액션의 전통이 있습니다. 선의 아름다움과 연출된 합이 중심인 스타일로, 와호장룡이나 황비홍 시리즈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할리우드는 총기와 물량 공세, 단순한 복수 플롯을 결합한 방식을 오래 고수해왔고요. 레이드는 두 계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세 번째 문법을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맨손과 근접 무기, CG 없는 실제 타격, 그리고 신체가 공간과 부딪히는 물리적 현실감이 그것입니다.

폴리스 스토리 시절 성룡이 CG 없이 강행했던 위험한 스턴트의 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와호장룡이 보여줬던 공간 설계의 미학을 동시에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영화가 레이드 2라고 생각합니다. 실랏이라는 무술 자체의 구조가 그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됐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렛 에반스 감독이 레이드 3 대신 다른 방향으로 행보를 이어갔다는 겁니다. 2018년 공개한 범죄 스릴러 '스웨아링자'(Apostle)는 장르 자체가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고, 레이드 2의 클라이맥스가 남긴 여운을 이을 후속작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지금도 그 기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레이드 2는 복잡한 이론 없이도 그냥 보면 압도되는 영화지만, 들여다볼수록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