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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믹 블론드 (롱테이크 액션, 스파이 스릴러, 냉전 배경)


여성 액션 영화라고 하면 혹시 '예쁘게 싸우는 영화'라고 먼저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2017년작 아토믹 블론드를 직접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 영화는 예쁘게 싸우지 않습니다. 맞고, 넘어지고, 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1989년의 냉전 첩보전이 배경인 이 작품은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의 밀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롱테이크 액션, 직접 보기 전엔 몰랐습니다

이 영화를 보러 갈 때 저는 존 윅 감독 연출작이라는 이유로 단순히 '여성판 존 윅'이겠거니 예상했습니다. 총격전, 빠른 편집, 화려한 마무리. 그 공식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아토믹 블론드는 그 예상을 비틀어 버리더군요.

이 영화에서 가장 이야기되는 장면은 후반부 아파트 계단에서 펼쳐지는 약 10분짜리 격투 시퀀스입니다. 이 장면은 롱테이크(long take) 기법으로 촬영되었습니다. 롱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랫동안 끊지 않고 연속으로 찍는 촬영 방식으로, 현장의 긴장감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기술입니다. 실제로 이 시퀀스는 마치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은 것처럼 이어지는데, 보다 보면 관객인 저도 함께 숨이 찼습니다.

샤를리즈 테론은 이 장면을 위해 수개월간 격투 훈련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역을 최소화하고 직접 몸으로 받아낸 결과는 화면에서 바로 느껴집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무게감이 있고, 맞을 때 진짜 아파 보입니다. 이 영화가 공개된 이후 아카데미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가 이 정도의 피지컬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례로 자주 언급될 만큼, 그 완성도는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액션 연출 방식만 놓고 비교해 보면 존 윅이 총기 격투술인 건 파이팅(gun fighting)과 브래드 클로즈(close-quarter combat)의 정밀함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아토믹 블론드의 격투는 날 것 그대로의 소모전에 가깝습니다. 그 차이가 오히려 저에게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웅이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사람의 싸움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스파이 스릴러로서의 아토믹 블론드, 액션만 기대했다면 오산

아토믹 블론드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원작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픽 노블이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장편 만화 형식의 서사물로, 영화나 소설과 동일한 깊이의 스토리 구조를 가집니다. 원작의 제목은 콜디스트 시티(The Coldest City)이며, 이 제목만 봐도 영화가 지향하는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전달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예상 밖으로 빠져든 부분은 스파이 스릴러(spy thriller)로서의 서사 구조였습니다. 스파이 스릴러란 첩보 요원의 임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신, 정보전, 심리적 긴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장르를 말합니다. 이 영화는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요원들이 한 공간에 얽혀 있는 구조로, 누가 아군인지 끝까지 알 수 없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느낌을 극대화한 요소가 바로 냉전(Cold War) 시대 베를린이라는 배경입니다. 냉전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직접 무력 충돌 없이 이념과 정보전으로 대립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1989년 베를린은 그 긴장의 정점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영화는 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꽤 정확하게 재현했습니다. 어두운 골목, 검문소, 동독과 서독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표정까지요.

냉전 시기 베를린의 역사적 맥락에 관심이 생겼다면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의 베를린 장벽 아카이브를 한번 살펴보시면 영화를 훨씬 입체적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영화 보고 나서 찾아봤는데,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달리 읽혔습니다.

아토믹 블론드가 단순한 액션 영화와 다른 이유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원작 그래픽 노블 기반의 탄탄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어, 마지막 장면까지 정보가 계속 재편됩니다.
  2. 복수극으로 단선 전개된 존 윅과 달리, 아토믹 블론드는 다국 요원들의 첩보전이 겹겹이 얽혀 있습니다.
  3.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가 80년대 베를린의 냉기를 일관성 있게 구현합니다.
  4. 롱테이크 액션과 감각적인 80년대 뉴웨이브 사운드트랙이 서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냉전 배경이 주는 무게감,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

그때 느낀 건, 이 영화가 액션으로 시작해서 분위기로 끝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총성이 멈추고 화면이 어두워진 뒤에도, 베를린의 차가운 공기 같은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잔상이 꽤 오래 갔습니다.

이 영화는 스파이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내러티브 프레임(narrative frame) 구조를 활용합니다. 내러티브 프레임이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아토믹 블론드에서는 임무 종료 후 심문 장면이 전체 사건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배치됩니다. 덕분에 관객은 처음부터 로레인의 진술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베를린 지부장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있는 아군처럼 보이다가 점점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 불안감이 냉전 배경과 맞물리면서 신뢰 자체가 사치인 세계를 설득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소피아 부텔라가 연기한 프랑스 요원 델핀과의 관계도, 그 온도 차이가 오히려 이 차가운 영화에서 유일하게 체온이 느껴지는 지점이라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감독 데이빗 레이치는 이후 데드풀 2, 불릿 트레인 등을 연출하며 스타일리시한 액션 연출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는데, 아토믹 블론드는 그 감성의 원형이 담긴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각적인 영상 언어와 음악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일관된 미학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액션 연출 스타일과 감독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IMDb의 데이빗 레이치 페이지에서도 일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토믹 블론드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그 안에 스토리가 함께 있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잘 맞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폭발적인 장면만 기대하고 들어가면 초반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면, 그 속도 조절이 의도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한 번 보셨다면 처음부터 다시 보시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분명히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