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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미장센, 복제인간, 카타르시스)


오블리비언 포스터만 봐도 그렇고, 톰 크루즈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선입관이 너무 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13년작 SF 영화 오블리비언,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습니다.

톰 크루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미장센

많은 분들이 오블리비언을 그냥 "톰 크루즈 나오는 SF 영화" 정도로 기억하시는데, 저는 그 반응이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그는 여전히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체력과 눈빛으로 스크린을 채우고, 보는 내내 "저 아저씨는 대체 어떻게 관리하시는 건지" 감탄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제 시선을 먼저 붙잡은 건 미장센(mise-en-scène)이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색감, 공간 구성, 배우의 위치 등을 통해 감독이 의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영화 기법입니다. 오블리비언의 미장센은 한 마디로 정제된 백색의 고독이었습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스카이 타워의 투명하고 매끄러운 화이트 톤은, 황폐해진 지구 위에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 잭 하퍼의 외로움을 말 한마디 없이 전달해 줍니다.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크라우디오 미란다는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자로, 실제 하와이 화산 지대와 아이슬란드의 거친 대지를 직접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저 배경이 CG야, 실제야?" 하고 되돌려 봤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이 실제 촬영 현장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니 감동이 두 배였습니다.

특히 잭이 황폐한 지구 한구석에 혼자 꾸며놓은 아날로그 은신처, 레코드판이 돌아가고 책들이 가득 쌓인 그 작은 오두막의 초록빛 온기는 스카이 타워의 차가운 흰색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진짜 이런 곳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인 줄 알면서도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 식상하다고 보시나요?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SF 영화가 너무 많다 보니, 오블리비언도 그 수많은 작품 중 하나겠거니 하고 보셨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복제인간 서사는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클론(Clone), 즉 복제인간이란 원본 개체와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가진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의미합니다. 오블리비언에서는 주인공 잭 하퍼가 수천 개의 복제본 중 하나인 49호라는 사실이 중반부 이후 밝혀지는데, 이 반전이 영화 전체의 무게 중심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단순히 "복제인간이 있더라"는 설정이 아니라, 그 복제된 존재가 어떻게 진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가를 묻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시각에서는 기억(Memory)의 연속성 문제, 즉 몸이 복제되어도 기억과 감정이 이어진다면 그것이 동일한 인간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블리비언은 그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고,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저는 이 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들의 주요 서사 유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본 대 복제본의 대결 구도 (예: 아일랜드, 더 문)
  2. 복제된 존재의 정체성 혼란과 자아 찾기 (예: 오블리비언, 네버 렛 미 고)
  3. 복제 기술의 윤리적 딜레마를 사회 비판적으로 다루는 방식 (예: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4. 복제를 소유와 통제의 도구로 그리는 디스토피아 서사

오블리비언은 두 번째 유형에 가장 가깝지만, 동시에 마지막 유형의 비판 의식도 품고 있습니다. 거대 인공지능 테트(TET)가 인간을 부품처럼 복제하고 소모하는 구조 자체가 현대 시스템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하거든요. SF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작품을 단순 오락 영화가 아닌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담론의 텍스트로 분석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적·철학적 흐름을 말합니다(출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M83의 사운드트랙이 완성한 청각적 카타르시스

이 영화를 볼 때 음소거로 보신 분은 없겠지만, 혹시 그런 분이 계신다면 꼭 다시 한번 소리와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오블리비언의 사운드트랙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신스팝 밴드 M83이 작업한 이 영화의 스코어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결합한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신시사이저란 전자 신호를 이용해 다양한 음색을 인공적으로 생성하는 전자 악기로, 특히 SF 장르 음악에서 몽환적이고 광활한 질감을 내는 데 자주 쓰입니다. M83은 이 악기를 활용해 잭의 고독과 기억의 파편들이 뒤엉키는 혼란을 청각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음악을 듣고 난 뒤 M83의 팬이 되었습니다. 특히 "Oblivion"이라는 제목의 트랙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귓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그 리듬은, 극 후반부 잭이 테트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며 고대 로마 시를 읊조리는 장면과 맞물려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극대화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예술 작품을 통해 쌓인 감정과 긴장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작용을 의미합니다.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율이 이렇게 높은 영화를 최근에 본 적이 없었는데, 오블리비언은 그 기준에서 보면 꽤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 볼 가치가 있는가

화려한 우주 전쟁을 기대하고 보셨다가 실망했다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실제로 오블리비언은 폭발과 총격 장면보다 텅 빈 풍경과 인물의 표정에 훨씬 더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합니다. 그 점에서 "액션이 부족하다"는 반응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자신의 미발간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란 만화의 형식을 빌리되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서사적 깊이를 갖춘 장편 만화 소설을 뜻합니다. 원작의 시각적 감수성이 영화 전반에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에, 오블리비언은 장르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움직이는 그림에 가깝습니다.

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연기한 빅토리아가 복제인간이었다는 사실도, 처음엔 단순한 설정 반전처럼 느껴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꽤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그녀가 보여준 충성과 감정이 프로그래밍된 것이든 아니든,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결국 뇌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산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블리비언 관련 상세 정보와 수상 이력은 IMDb 오블리비언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오블리비언은 액션 영화를 기대한 분께는 다소 느릴 수 있고, SF에 익숙하지 않은 분께는 설정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조작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과 사랑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는가를 묻는 이 영화는 한 번쯤 조용한 밤에 조명을 낮추고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다 보고 나면 또 생각이 나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입니다. 오블리비언 영화 강력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