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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리뷰 (오컬트, 신념, 미장센)


선이 왜 선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샤워하면서도 그 질문을 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알고리즘이 던져준 영화 한 편이 그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혀 왔습니다. 2019년작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 한 번 보고 이 글을 씁니다. 두 번 보면 더 보인다는데, 한 번만으로도 이미 심박수가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공포 라디오 알고리즘이 데려간 곳

저는 무교지만 샤머니즘(shamanism)을 꽤 진지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샤머니즘이란 자연과 초자연 사이를 매개하는 무속 신앙 체계를 뜻합니다. 무당을 맹신하거나 시간을 쏟는 수준은 아니지만, 민속신앙의 세계관이 가진 감각은 진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공포 라디오를 하루 세 시간씩 듣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취향을 가진 저의 알고리즘에 "한국 최고의 오컬트 영화"라는 문구가 뜬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컬트(occult)란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힘을 다루는 장르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공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바하>는 그 정의에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줄거리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종교 비리를 파헤치는 박 목사(이정재 분)가 신흥 종교 단체 '사슴동산'을 조사하다가, 태어나선 안 될 존재와 얽힌 거대한 음모에 맞닥뜨립니다.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쌍둥이 자매의 비밀, 살인을 사명으로 여기는 나한(박정민 분)이 하나씩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장르적 쾌감을 주면서도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한 덩어리로 굴러간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념이 무기가 될 때 — 영화가 말하는 것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날 샤워를 하면서도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이 정의인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를 따라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설의 끝은 항상 믿음으로 귀결됐습니다. 선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 그 신념 때문에 선을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바하>는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신념 체계(belief system) 안에서 움직입니다. 신념 체계란 한 개인이나 집단이 세계를 해석하는 고유한 믿음의 구조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 신념이 외부에서 심어진 것일 때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당사자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나한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박정민 배우는 올바른 심성과 잘못된 신념 사이에서 찢겨 있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제가 경험상 이런 연기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무덤덤한 표정 뒤에 아이 같은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이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을 제 방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2.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3. 구원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저지른 악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저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끝내 답을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도 못 맞췄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그런데 그 어질어질함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종교적 세계관을 이 정도 밀도로 구현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KOFA)의 아카이브에서도 오컬트 장르로 분류된 한국 상업영화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그 희소성 안에서 <사바하>는 불교의 사천왕 설화와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서사의 핵심 뼈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연출이 만드는 몰입 — 미장센과 완급 조절의 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된 건 연출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조명, 색감, 구도, 배우의 위치—를 통틀어 가리킵니다. <사바하>의 미장센은 한마디로,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타이밍이 정교합니다.

강원도의 차갑고 축축한 눈밭과 사찰 내부의 붉고 어두운 조명이 교차될 때마다, 저는 화면에 완전히 흡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몰입감은 스토리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색감과 명도, 공간 구성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합니다.

완급 조절(pacing)도 이 영화의 큰 강점입니다. 완급 조절이란 서사의 속도를 조절해 관객의 긴장과 이완을 의도적으로 반복시키는 연출 기법을 의미합니다. <사바하>는 잔잔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심장을 조이는 장면을 삽입하고, 다시 천천히 호흡을 고릅니다. 그 리듬이 두 시간 내내 이어지니 심박수가 내려올 틈이 없었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불교의 염불 소리와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가 섞인 스코어는 처음 들을 때는 낯설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되면 그 혼합이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동서양 종교의 충돌과 융합—을 청각으로 구현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미스터리 장르가 가진 가장 큰 재미 요소인 '누가, 왜, 언제'를 따라가는 과정도 탄탄합니다. 옛날 철가방 짜장면 뚜껑을 살살 열 때처럼, 단서를 조금씩만 보여주면서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만드는 구성입니다. 제 경험상 그런 궁금증을 두 시간 동안 유지하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BIS) 통계에 따르면 <사바하>는 2019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180만 명을 돌파하며 오컬트 장르로는 이례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한 번 보고 이 글을 쓰는 저로서는 아직도 이해 못 한 장면이 분명 있습니다. 두 번째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이 영화를 다시 극장으로 끌어당기는 힘인 것 같습니다. 오컬트 장르가 낯설거나 종교 소재가 부담스러운 분에게도 한 번은 권하고 싶습니다. 선과 악, 신념의 무게에 대해 영화 한 편이 이렇게 많은 질문을 남길 수 있다는 것, 직접 겪어보시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