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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줄거리, 반전, 열린결말)


2018년 개봉한 영화 독전은 관객 수 388만 명을 기록하며 그해 여름 극장가를 뒤흔든 작품입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약 수사물이라길래 뻔한 언더커버 플롯을 예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거든요. 한 발의 총성으로 끝나버리는 그 마지막 장면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줄거리: 이 선생을 잡아라, 그런데 이 선생이 누구냐

영화의 핵심 구조는 단순합니다. 마약조직의 보스 '이 선생'을 잡으려는 형사 원호(조진웅)의 추적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보통 범죄물과 다른 건, 이 선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설정입니다. 실체가 없는 존재를 쫓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야기의 첫 번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원호는 이 선생에게 접근하기 위해 가출 소녀 수정을 조직에 침투시키지만 소녀는 정체가 발각된 채 참혹하게 죽고 맙니다. 죽기 전 수정이 원호에게 남긴 기호가 숫자 '8'이거나 '무한대(∞)' 기호였는데,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나중에 그 의미를 알고 나서야 등골이 서늘해졌죠.

이후 이야기는 층위가 계속 바뀝니다. 이 선생 뒤를 봐주던 오연옥(김성령)이 등장해 협조를 제안하다가 국밥을 먹는 도중에 급사합니다. 위장 수사(Undercover Operation)란 잠재적 적과 일시적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고위험 수사 기법인데, 이 선생 쪽은 그 협력 관계를 끊어내는 속도가 수사팀보다 항상 한 박자 빠릅니다. 이 영화에서 원호가 계속 뒤처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인천 공장 폭발 현장에서 살아남은 서영락(류준열)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습니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화상 입은 진돗개 한 마리가 영락의 입을 열게 만드는 장면은, 솔직히 처음엔 좀 황당했습니다. 엄마가 죽어도 꿈쩍 안 하던 사람이 개 한 마리 때문에 마음을 바꾼다는 게요.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게 이 캐릭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만큼 사람보다 개를 더 믿었던 거겠죠.

반전: 위장과 실체가 뒤바뀌는 순간들

독전의 가장 볼만한 장면은 위장 수사 시퀀스들입니다. 원호가 중간 보스 박선창으로 변장해 중국 마약계 거물 진하림(김주혁)을 만나는 장면, 그리고 다시 원호가 진하림으로 분장해 진짜 박선창(박해준)을 속이는 장면이 연달아 나옵니다.

누아르(Noir)란 도덕적 모호성과 운명론적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범죄 장르를 뜻합니다. 독전은 이 누아르 문법을 철저하게 따르면서도 한국적인 정서, 구체적으로는 조직 내 위계질서와 배신의 패턴을 날카롭게 집어넣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원호가 진하림을 연기할 때 수사팀 팀원을 직접 두들겨 패서 피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려면 그 정도를 해야 한다는 설정인데, 조진웅 배우가 그 장면에서 눈빛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그 눈빛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박선창을 돌려보낸 후 원호는 마약 과다 흡입으로 욕조에 들어가 얼음으로 버팁니다. 마약성 물질의 과다 복용(Overdose)이란 신체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한 약물이 체내에 유입되어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학적으로는 호흡 억제,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영화적 과장이 있겠지만, 그 장면의 절박함만큼은 충분히 실감이 났습니다.

후반부에는 브라이언(차승원)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신도를 죽인 혐의를 받는 인물인데, 이 선생의 수법을 모방해 인천 공장을 폭파하고 스스로 이 선생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브라이언의 손에 끼워진 반지에 무한대(∞) 표식이 있었고, 그제야 수정이 죽기 전 그렸던 기호의 의미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선생을 쫓다 보면 자꾸 또 다른 이 선생이 나타나는 구조, 그게 독전의 핵심 아이러니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을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독전은 이 미장센을 적극 활용합니다. 태안 소금 공장의 텅 빈 공간감, 농아 남매가 밤새 약을 만드는 장면의 낮은 조도, 그리고 노르웨이 설원의 흰빛이 대비를 이루며 각 장면의 온도 차를 만들어냅니다.

제가 독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원호가 한 이 말이었습니다. "뭔가를 엄청나게 쫓다 보면 가끔 내가 뭘 쫓나 싶어지거든." 수사물의 대사라기보다 삶에 지친 사람이 내뱉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그 대사 하나로 원호라는 인물이 갑자기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독전의 장르적 특성과 한국 범죄 영화의 흐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분들은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서 제공하는 장르별 흥행 분석 자료를 참고해 보시면 좋습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범죄 장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흐름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열린결말: 탕,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

진짜 이 선생은 서영락이었습니다. 바나나와 마약을 싣고 온 컨테이너에 실려 한국에 왔다가 육필순을 만나 그 아들 이름으로 살아온 인물. 박선창의 팔을 자르고, 브라이언의 등짝을 불로 지져 화상을 입힌 후, 자신을 찾아오던 원호에게 전화 한 통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 선생 내려가십니다."

형사증을 반납한 원호는 진돗개 몸에 심어둔 GPS 신호를 따라 노르웨이까지 찾아갑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억압된 감정이 예술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뜻하는데, 독전의 엔딩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수년간의 추격 끝에 드립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 원호가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묻습니다. "넌 살면서 행복했었던 적 있냐?"

그리고 탕. 한 발의 총성으로 화면이 끝납니다.

이 열린 결말을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제가 처음엔 원호가 영락을 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곧 개봉한 독전 2에 두 사람이 모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어쩌면 그 총성은 아무도 맞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공중에 쏜 것이거나. 중요한 건 누가 죽었냐가 아니라, 원호가 왜 그 질문을 했냐는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결말은 어떤 쪽인가요? 열린 결말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래 네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원호가 영락(이 선생)을 쐈다 - 형사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것
  2. 원호가 스스로를 쐈다 - 수년간의 집착이 끝나며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것
  3. 영락이 원호를 쐈다 - 이 선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4. 아무도 맞히지 않았다 - 총성은 작별 인사였고, 둘 다 살아 있다

고 김주혁 배우의 유작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진하림의 광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촬영 당시 김주혁 배우의 분량은 이미 완료된 상태였고, 후시 녹음 일부만 서현우 배우가 대신 진행했다고 합니다(한국영상자료원 KMDB 참고). 그 맥락을 알고 나면 그의 장면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평론가 평점은 낮은 편입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5점, 박평식 평론가는 4점을 줬습니다. 개연성이 군데군데 던져지는 건 사실이고 수사팀 여형사 등 일부 캐릭터는 병풍 수준이었던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스토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인물이 살아있으면 영화는 살아남습니다. 독전은 그런 영화입니다.

독전 2에서 류준열 배우가 하차하고 오승훈 배우가 영락 역을 맡는다는 소식은 조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