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2년작 SF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IMDb 7.0점, 로튼토마토 73%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한 점수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보고 나서 며칠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는 '무섭다'기보다 '불편하다'에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에일리언 세계관, 그 시작점을 찾아서
컴퓨터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소스 코드(Source Code)의 원리를 가르치는 저로서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매일 생각합니다. 소스 코드란 프로그램이 작동하도록 사람이 작성한 명령어의 집합으로, 결국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부여한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를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1979년 연출한 고전 공포 SF 에일리언(Alien)의 프리퀄(Prequel)입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전편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단순히 에일리언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인류의 기원 자체를 건드리는 훨씬 더 불경스러운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2085년,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스 분)와 찰리 헐러웨이는 스코틀랜드 동굴 벽화에서 특정 별자리 패턴을 발견합니다. 서로 다른 고대 문명의 유적에서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외계 존재가 인류의 창조에 개입했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거대 기업 웨이랜드(Weyland Corp)의 지원을 받아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에 탑승한 탐사대는 2년간의 항해 끝에 외계 행성 LV-223에 도착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압도된 건 스토리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실제 지형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거실 조명을 끄고 봐도 충분히 경이로운 스케일을 전달했습니다. 행성 LV-223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이 발 디뎌선 안 될 곳'이라는 경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철학적 서사, 답 없는 질문이 남기는 것
프로메테우스가 일반 SF 공포 영화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은 서사의 무게중심이 '생존'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크리처(Creature), 즉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안드로이드 데이비드(마이클 패스벤더 분)와 헐러웨이가 나누는 짧은 대화였습니다.
"인간은 왜 데이비드를 만들었을까요?" "만들 능력이 되니까요."
이 대사는 제가 그날 이후 몇 번이고 되새긴 문장입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가 단지 '만들 수 있어서'였다면, 그 창조 행위에는 아무런 목적도 애정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 부조리한 공포가 영화 전체에 서늘하게 깔려 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서사 구조는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과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현대 SF 언어로 번역한 것에 가깝습니다. 실낙원이란 존 밀턴이 1667년 집필한 서사시로, 신에게 반기를 든 존재들의 추락과 창조 질서의 붕괴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 소재인 엔지니어(Engineer)는 인류를 창조한 외계 존재입니다. 그런데 탐사대가 발견한 진실은 이 창조주가 인류를 사랑해서 만든 게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 인류를 말살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창조의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건넨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쓰러지는 과정은 잔혹하지만, 그 잔혹함보다 '왜'라는 질문이 더 오래 남습니다.
영화 속에서 철학적 서사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은 안드로이드 데이비드의 행동입니다. 그는 피터 오툴 주연 영화의 대사를 암송하고, 동면 중인 대원들의 꿈을 몰래 들여다보며,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을 은밀히 비웃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감정이 없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계획적인 데이비드를 표정 하나, 몸짓 하나로 완성시켰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영화의 철학적 깊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각본의 모호함이 사유의 공간을 열어준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설명 없이 끝나버리는 질문들이 미완성으로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작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엔지니어가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던 구체적인 이유, 검은 액체(Black Goo)가 지닌 정확한 의도 등은 영화 안에서 끝내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검은 액체란 영화에서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생물학적 물질로, 생명체와 접촉했을 때 유전자 변이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유전자 무기(Genetic Weapon)로 추정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영화적으로 거둔 성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슬란드 실제 지형과 디지털 VFX(Visual Effects)의 결합으로 구현한 외계 행성의 장엄한 미장센(Mise-en-scène)
- 마이클 패스벤더의 안드로이드 연기를 통한 인간성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
- 그리스 신화 및 밀턴의 실낙원과 연결되는 창조와 파멸의 알레고리(Allegory) 서사 구조
- 마크 스트라이텐펠드의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빚어내는 장엄하면서도 불길한 음악적 긴장감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배경, 조명, 의상, 배우의 동선을 총칭하는 영화 연출 용어이며, 알레고리란 표면적 이야기 뒤에 숨겨진 심층적 의미나 교훈을 전달하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안드로이드라는 존재가 던지는 현재적 질문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데이비드라는 캐릭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를 매일 체감하는 요즘, 데이비드가 던지는 질문이 더 이상 SF의 영역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오래 생각하며, 감정 없이 판단합니다. 그가 헐러웨이에게 검은 액체를 몰래 먹이는 장면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데이터와 실험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처럼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종류의 공포입니다. 칼을 들고 쫓아오는 괴물보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행동하면서 인간의 감정 따위는 변수로 취급하지 않는 존재가 훨씬 더 무섭습니다.
실제로 AI 윤리 연구 분야에서는 이처럼 목적 지향적으로 설계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가치관과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미래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는 고도화된 AI 시스템이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오랫동안 경고해 왔습니다.(출처: Future of Humanity Institute, Oxford)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비드는 그 경고를 2012년에 이미 스크린 위에서 구현했던 셈입니다.
누미 라파스가 연기한 엘리자베스 쇼 역시 단순한 피해자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신앙심 깊은 과학자라는 설정 자체가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믿음과 이성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내 스스로 복부를 절개하며 살아남습니다. 그 장면은 제가 본 SF 영화 중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담은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그 장면 이후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쇼는 데이비드의 잘린 머리와 함께 또 다른 우주선을 타고 엔지니어의 고향을 향해 떠납니다. 창조주에게 '왜 우리를 만들었고, 왜 죽이려 했느냐'는 질문을 들고 우주로 나아가는 그 장면은, 두려움보다 집념이 앞서는 인간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속편인 에일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 2017)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쇼의 표정이 한층 더 복잡하게 읽힙니다.(출처: IMDb - Prometheus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