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가 끝나고 나서 "그래서 뭔 내용이었지?" 싶었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2013년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보고 딱 그 상태가 됐습니다. 광고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봤는데, 막상 보고 나니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옇더라고요. 그래서 이 글은 그 안개를 한 번 걷어보려는 시도입니다.
배우 섭외: 이 캐스팅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켰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어, 이분도 나오네?"였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영화 내내 반복했습니다. 박용우, 김성균, 장현성, 김윤석, 조진웅, 박해준, 문성근까지. 대한민국 연기파 배우들을 이 한 편에 어떻게 다 끌어모았는지 그게 먼저 신기했습니다.
캐스팅(casting)이란 단순히 얼굴을 끌어모으는 일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설계 작업입니다. 이 영화는 그 설계가 꽤 영리했습니다. 다섯 명의 아버지 캐릭터가 각자 뚜렷한 색깔을 갖고 있거든요. 김윤석은 강압적이고 냉혹한 두목형 아버지, 조진웅은 아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다정한 아버지, 장현성은 점잖고 절제된 아버지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 대비가 없었다면 화이라는 소년이 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지 관객이 납득하기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 박용우씨였습니다. 크레딧상 특별출연인데,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부패한 경찰 역할로 스토리를 이어주는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특별출연치고는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반대로 문성근씨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해 강렬한 인상만 남기고 퇴장합니다. 이 둘의 출연 분량을 맞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크레딧 표기가 왜 저렇게 됐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이란 주연 한 명에게 극의 무게를 몰아주는 대신, 여러 배우들이 균형 있게 극을 떠받치는 구성 방식입니다. 화이는 이 방식을 택했고, 덕분에 여진구라는 당시 신예 배우가 베테랑들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강한 조연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해주니, 여진구의 혼란과 분노가 더 실감 나게 전달됐다고 봅니다.
장준환 연출: 난해함이 문제인가, 깊이가 문제인가
장준환 감독 하면 지구를 지켜라!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화이를 보면서 내내 그 영화가 겹쳐 보였습니다. 두 작품 모두 보고 나서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야?"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장준환 감독의 연출 스타일 자체가 명쾌한 해설보다는 여백과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해석의 부담을 넘기는 방식이거든요.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세트, 의상 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화이에서 이 미장센은 꽤 공들여 설계돼 있습니다. 폐공장, 어두운 아지트, 차가운 색감의 조명이 소년의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대신 말해줍니다. 문제는 이 상징들이 서사(narrative)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구간이 있다는 겁니다. 서사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와 흐름을 뜻하는데, 중반부에서 몇 가지 설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관객 입장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감독이 의도적으로 남긴 여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반 관객과의 소통에서 생긴 거리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화이가 왜 여러 명을 동시에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임지은씨가 연기한 인물이 진짜 어머니인지 아닌지 같은 기본적인 설정조차 영화 초반에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장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저는 영화를 다 보고도 한동안 "그래서 그게 맞는 거야, 아닌 거야?" 하고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화이에서 괴물의 형상이 시각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상징적 의미를 시각화하는 시도 자체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이 오히려 영화의 긴장을 흐트러뜨렸다고 느꼈습니다. 상징은 때로 보여주지 않을 때 더 강하게 작동하거든요. 이 부분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굳이 시각화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각성 시퀀스(awakening sequence)는 다릅니다. 각성 시퀀스란 주인공이 자신의 진실 혹은 본질을 깨닫고 행동으로 전환하는 서사적 전환점을 말합니다. 화이가 자신의 출생과 얽힌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고, 다섯 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술들을 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그 흐름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몰입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만큼은 난해함이 걷히고 감정이 곧장 들어왔습니다.
카타르시스: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화이를 보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재밌어?" 혹은 "이해돼?"인데, 솔직히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 영화입니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특이한 점인 것 같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론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관객이 극 속 인물의 고통과 두려움을 경험하며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화이는 이 카타르시스를 복수극의 문법으로 전달하려 합니다. 소년이 자신을 짓눌렀던 모든 것들을 향해 총구를 돌리는 그 장면에서, 관객은 단순한 폭력 쾌감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의 해소를 경험하게 됩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좀 더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제가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 스토리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파악하려는 시도를 내려놓을 것. 이 영화는 논리 퍼즐이 아닙니다.
- 다섯 아버지 캐릭터 각각의 성격 차이에 집중할 것. 그 차이가 화이의 내면 갈등을 설명해 줍니다.
- 후반부 각성 시퀀스를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전반부를 볼 것. 그러면 중반부의 애매함이 덜 답답합니다.
-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 음악감독 모그(MOWG)의 스코어는 장면의 감정을 꽤 충실하게 안내해 줍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0월 개봉한 화이는 최종 누적 관객 수 약 131만 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같은 해 개봉한 다른 상업 영화들에 비하면 흥행 성적이 아쉬운 편입니다. 장준환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대중과 완전히 만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학계에서도 이 영화는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적 접근성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참고: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래도 저는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습니다. 여진구가 이 작품 이후 어떤 배우로 성장했는지를 생각하면, 화이는 그 출발점으로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모든 걸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개운한 쪽보다는 찜찜한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찜찜함 안에 뭔가가 남아 있다는 느낌, 그게 이 영화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목적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목적으로 접근하면 훨씬 만족도가 높을 겁니다. 한국 스릴러 중에서 배우 앙상블이 궁금한 분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품입니다.
--- 참고: 한국영화아카데미).그래도 저는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습니다. 여진구가 이 작품 이후 어떤 배우로 성장했는지를 생각하면, 화이는 그 출발점으로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모든 걸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개운한 쪽보다는 찜찜한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찜찜함 안에 뭔가가 남아 있다는 느낌, 그게 이 영화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목적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목적으로 접근하면 훨씬 만족도가 높을 겁니다. 한국 스릴러 중에서 배우 앙상블이 궁금한 분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