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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오프닝 서스펜스, 크리스토프 왈츠, 카타르시스)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2009년 개봉 당시 브래드 피트의 이름값에 기대를 걸었던 저도, 막상 화면을 켜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타란티노가 만든 2차 세계대전 복수극,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스러울 만큼 할 말이 많은 영화입니다.

오프닝 서스펜스, 히치콕도 고개를 끄덕였을 20분

서스펜스(Suspense)란 관객이 결과를 알면서도 그 과정을 보며 긴장을 놓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평생 추구했던 바로 그 기법이지요. 영화 이론에서 서스펜스는 단순한 깜짝 놀라게 하기와 구분됩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충격이 아니라, 테이블 아래 폭탄이 있다는 걸 관객만 아는 채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이 서스펜스입니다.

타란티노는 오프닝에서 이것을 교과서적으로 실현합니다. 한스 란다 대령이 프랑스 농부와 우유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처음엔 그저 한가롭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슬며시 내려가면서 마룻바닥 아래 숨죽이고 있는 유대인 가족을 비춥니다. 저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화면 속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그 발밑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관객의 심장을 이렇게 조일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오프닝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영화 속 연합군 작전장교의 이름이 '아치 히콕스'인데,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에서 따온 것이 분명합니다. 영화기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작전에 투입된다는 설정도 타란티노 특유의 유머 코드입니다. 이처럼 영화 언어를 아는 사람에게는 한 겹 더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영화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고, 있으면 더 재미있는 구조입니다.

서스펜스 연출에 있어서 이 오프닝이 타란티노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거기에 지하 술집 장면을 반드시 함께 언급해야 한다고 봅니다. 손가락으로 숫자 3을 표현하는 방식이 영국식과 독일식이 다르다는 사실 하나로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그 시퀀스는, 대사 한 마디 없이도 관객이 먼저 눈치채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두 장면을 연달아 떠올리면 타란티노가 서스펜스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일관되고 치밀한지 느껴집니다.

크리스토프 왈츠, 악역의 기준을 다시 쓴 배우

프로파간다(Propaganda)란 특정 집단이 대중의 감정과 판단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보 및 메시지를 뜻합니다. 나치 독일은 영화를 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는데, 실제로 나치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를 대중 통제의 핵심 도구로 삼았습니다. 타란티노는 이 역사적 맥락을 영화의 클라이맥스 무대로 끌어들입니다.

그 무대 위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이 바로 한스 란다 대령입니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이 캐릭터를 두고 '역대 최고의 영화 악당 중 하나'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기존 악역들이 위협적이거나 잔인함으로 공포를 주는 방식이었다면, 한스 란다는 철저하게 유쾌하고 우아합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특히 한스 란다가 4개 국어를 전환하며 상대방의 심리를 해부하는 장면들은 캐릭터 분석(Character Analysis)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캐릭터 분석이란 인물의 동기, 행동 양식, 내면 심리를 체계적으로 읽어내는 방식인데, 한스 란다는 대사 하나하나가 심리전의 도구입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타란티노가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캐릭터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이 역할을 연기하기 전까지 국제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의 힘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조연상까지, 이 영화 한 편이 그의 커리어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타란티노 영화의 악역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또 어떤 배우가 발굴될지 기대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를 보고 나면, 브래드 피트가 주연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웃기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악역 캐릭터의 완성도가 일관되게 높은데, 한스 란다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상단에 놓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IMDb의 바스터즈 페이지에서도 관객들이 한스 란다를 압도적으로 영화 최고의 캐릭터로 꼽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타르시스, 역사를 스크린 위에서 불태우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감정의 억압이나 고통이 예술 경험을 통해 해방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시학(Poetics)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비극을 관람하면서 공포와 연민을 느끼고 그것이 해소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타란티노는 이 개념을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적용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그런 방식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의 결말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그랬어야 했다는 전 세계인의 집단적 소망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실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나치 수뇌부가 불타는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얼마나 뻥 뚫렸는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시네마틱 리벤지(Cinematic Revenge), 즉 영화적 복수라는 표현이 이 작품만큼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요. 쇼샤나가 자신의 극장에 쌓아둔 질산셀룰로오스(Cellulose Nitrate) 필름을 이용하는 장면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질산셀룰로오스 필름이란 20세기 초중반 영화 제작에 사용된 고인화성 필름으로, 불에 극도로 잘 타는 특성 때문에 실제로 많은 화재 사고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타란티노가 이 소재를 복수의 도구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영화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선택입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카타르시스의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치 고위 장교 전원이 극장 안에서 최후를 맞는 구조적 반전
  2. 역사 속 피해자였던 쇼샤나가 복수의 주체가 되는 서사적 전환
  3. 히틀러가 스크린 앞에서 총격을 받는, 현실에선 불가능했던 결말의 실현
  4. 마지막 장면에서 브래드 피트가 카메라를 향해 건네는 타란티노 자신의 자평

마지막 장면, 알도 레인이 한스 란다의 이마에 나치 표식을 새기며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 대사는 단순한 극 중 대사가 아닙니다. 타란티노 자신이 이 영화에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직접 선언한 것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이 대사를 메타픽션(Metafiction)적 자기선언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데, 메타픽션이란 작품 안에서 작품 자체의 존재를 의식하고 언급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그 해석에 저도 동의합니다. 이런 마무리를 설계할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될까요.

타란티노 영화에 대한 더 깊은 분석은 로저 이버트의 원문 리뷰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이 영화를 타란티노 커리어 최고작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전쟁 영화이기 이전에 언어의 영화이고, 심리극이며, 영화 자체에 대한 헌사입니다. 처음 본 날의 그 뻥 뚫리는 느낌이 이 영화를 또 보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오프닝 20분만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그 이후로는 빠져들어 보게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