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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느와르, 대장동, 역주행)


2016년 개봉한 영화 <아수라>가 2021년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터지자 넷플릭스 역주행 1위에 올랐습니다. 공공개발의 외피를 쓴 민간 이익 극대화 구조, 시장이 직접 사업에 사인하는 장면, 50억 단위의 뒷돈 거래까지. 저도 처음 이 뉴스를 보고 "설마" 싶어 다시 틀었다가 중간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영화인지 다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거든요.

2016년 영화가 2021년 뉴스를 먼저 썼다

영화 속 가상의 도시 '안남시'에서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가 추진하는 도시개발 사업 구조는, 요즘 언론에서 연일 다루는 대장동 개발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도시개발위원회(都市開發委員會)란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민간 위원과 공무원이 함께 심의하는 기구를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 위원회는 구색 맞추기 형식에 불과하고, 위원 중에는 시장과 형동생 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실제 대장동 사건에서도 개발 이익의 분배 구조를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는 점에서 묘하게 겹칩니다.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인 "안남을 제2의 분당으로, 천당 위에 분당 아닙니까"는 단순한 선거 연설이 아닙니다. 이 대사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얼마나 절대적인 정치 언어로 기능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당시 땅을 팔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이 나중에 "속았다"고 하소연했다는 실제 보도가 겹쳐 보여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구조는 '정치 쇼(Political Staging)'입니다. 정치 쇼란 여론을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된 공개 퍼포먼스를 가리킵니다. 박성배는 조폭을 일부러 끌어들인 뒤 자기 머리에 칼을 갖다 대 피를 흘리고, 카메라 앞에서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이것이 영화적 과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현실의 어떤 장면들이 이보다 더 정교하게 연출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출처: KMDb), <아수라>는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으나, 2021년 10월 OTT 플랫폼에서의 검색량이 급격히 상승하며 재조명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현실을 예언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느와르 문법으로 읽는 안남시의 먹이사슬

느와르(noir)란 원래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으로, 영화 장르로서는 도덕적 모호성, 부패한 권력, 파멸하는 인물을 중심에 놓는 하드보일드 범죄 장르를 가리킵니다. 김성수 감독은 이 장르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했습니다. 선한 인물을 단 한 명도 두지 않은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불편하다", "공감할 캐릭터가 없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핵심 전략이라고 봅니다. 한도경(정우성 분)은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의 비리를 덮어주는 비리 형사입니다. 동정심이 생길 수 있는 설정이지만, 그가 저지르는 행위는 결코 봐줄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 불편한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물과 구별하는 지점입니다.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즉 주인공이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수라>에서 한도경은 전통적인 의미의 주인공 역할을 거부합니다. 그는 박성배와 김차인(곽도원 분) 양쪽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신하고 이용당하면서 스스로도 점점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빗속의 카체이싱보다, 한도경이 차 안에서 혼자 핸들을 쥐고 흐느끼는 그 짧은 숏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수라>가 보여주는 안남시의 먹이사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장 박성배: 개발 이권을 독점하고 자신의 손은 절대 더럽히지 않는 절대 권력자
  2. 형사 한도경: 시장의 행동대장이자 검찰의 프락치로 양쪽 모두에게 소모되는 존재
  3. 검사 김차인: 박성배를 잡으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또 다른 악
  4. 경찰 문선모: 충성 경쟁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한도경의 동생 같은 존재

이 구조에서 누구도 도덕적 우위를 점하지 못합니다. 박성배에게 50억 매수를 단칼에 거절한 김차인도, 결국 피날레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릎을 꿇고 충성맹세를 합니다.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는지를 이 한 장면이 다 설명해 줍니다.

역주행이 말해주는 것, 그리고 남은 질문들

영화의 배경인 안남시 '소장동'과 현실의 '대장동'이 발음과 지명 구조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 극 중 도시개발 이익 구조가 실제 화천대유 사건과 겹친다는 점 때문에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감독과 작가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배우·공간·색감 등을 통해 감독이 의도한 분위기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출 개념을 뜻합니다. <아수라>의 미장센은 특히 장례식장 피날레 시퀀스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형광등 아래 차갑게 빛나는 흰 관과, 그 사이에서 총을 겨누는 인물들의 대비는 부패한 권력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인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킵니다. 제가 이 영화를 거실 조명을 낮추고 볼 것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이 장면 때문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비극적 서사를 통해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합니다. 한도경의 마지막 대사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네요"는 그 카타르시스를 완성합니다. 이 대사가 힘을 갖는 이유는 그가 체념이 아니라 각성의 상태로 이 말을 내뱉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멈추지 못하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 아닐까 싶습니다.

"아수라가 실화냐"는 질문에 저는 아직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2016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2021년의 뉴스를 이토록 정확하게 닮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개발 비리와 권력 유착이 얼마나 반복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 구조는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참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 아카이브).

아직 <아수라>를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 오히려 더 적절한 시점일 수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가볍게 틀었다가 묵직한 무게감을 안고 끄게 될 것은 미리 각오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 참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 아카이브).

아직 <아수라>를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 오히려 더 적절한 시점일 수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가볍게 틀었다가 묵직한 무게감을 안고 끄게 될 것은 미리 각오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