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 우웨이스와 조 타슬림이 출연한 영화를 이미 한 편 봤으면서, 그 둘의 출세작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가렛 에반스 감독의 2011년작 레이드: 첫번째 습격을 뒤늦게 찾아보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액션 장르의 문법 자체를 다시 쓴 작품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설정, 그런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 — 액션 문법의 재정의
일반적으로 액션 영화는 복잡한 서사와 반전, 감정선이 있어야 몰입감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레이드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정말 단순합니다. 만삭의 아내를 집에 두고 출동하는 신입 경찰 라마(이코 우웨이스 분)가 속한 20명의 특수기동대가 자카르타의 30층짜리 낡은 아파트를 급습합니다. 이 건물은 마약 카르텔 보스 타마(레이 사헤타피 분)가 운영하는 일종의 범죄자 집결지로, 입주민 전체가 사실상 적입니다. 10년 동안 이 아파트를 습격했던 그 누구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는 설정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구사하는 서스펜스 알고리즘(Suspense Algorithm)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관객이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과정의 위험에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도록 설계된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가렛 에반스 감독은 이 기법을 공간의 제약으로 극대화합니다. 탈출구가 없는 폐쇄 공간, 층마다 새롭게 설계되는 장애물, 그리고 줄어드는 대원 수가 관객의 긴장을 층층이 쌓아 올립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놀랐던 건, 총격전이 끝나고 나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총격 씬이 마무리되면 잠깐의 숨 고르기가 오는데, 이 영화는 그 틈을 주지 않습니다. 숫적으로 크게 열세인 경찰들이 초반에 많이 쓰러지는 장면에서 '이 런닝타임을 어떻게 이어가나' 걱정이 들었는데, 그 걱정은 이후 맨손 격투 시퀀스가 시작되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는 다른 영화가 됩니다.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와 조셉 트래패니스(Joseph Trapanese)가 공동 작업한 사운드트랙도 이 긴장감에 결정적으로 기여합니다.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란 영상에 맞춰 제작된 음악 전체를 뜻하는데, 이 영화의 음악은 단순히 배경에 깔리는 것이 아니라 타격음과 맞물려 관객의 심박수를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조용한 복도 장면에서의 낮고 긴 음향과 격투 시퀀스의 타격적 비트가 교차되는 구조 덕분에, 귀도 함께 싸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실랏 무술이 스크린 위에서 완성되는 방식 — 이코 우웨이스와 야얀 루히안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핵심 이유는 인도네시아 전통 무술 실랏(Silat) 때문입니다. 실랏이란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수백 년에 걸쳐 발전한 무술 체계로, 관절 꺾기, 칼 사용, 빠른 보법을 결합한 실전 격투 무술입니다. 발리우드나 홍콩 무술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동작과는 결이 전혀 다릅니다. 더 거칠고, 더 실용적이며, 보는 사람이 아프게 느껴질 만큼 밀도가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액션 영화의 격투 장면은 철저하게 안무처럼 설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야얀 루히안이 매드독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면 그 '안무'라는 단어가 어색해집니다. 이분은 이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겸했는데, 스크린 위에서 보이는 움직임이 합을 맞추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 격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특히 최후반부에 라마 형제와 벌이는 3자 격투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제가 지금껏 본 맨손 액션 시퀀스 중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코 우웨이스는 다릅니다. 야얀 루히안처럼 압도적인 무술 실력보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몸 전체로 표현합니다. 그의 액션이 인상적인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절박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환경을 활용하는 방식, 부서진 문짝을 방패 삼아 공간을 점유하는 동선, 체력이 소진될수록 거칠어지는 호흡 연기까지 전부 계산된 것이 아니라 진짜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이코 우웨이스를 단순한 액션 배우 이상으로 만드는 지점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공간 구성을 총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레이드의 미장센은 좁은 복도와 어두운 계단, 형광등이 깜박이는 방 안에서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촬영감독 매트 플래너리와 디마스 수바자는 이 제약된 공간을 오히려 장점으로 삼아, 인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객이 항상 파악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복잡한 격투 장면에서도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레이드의 액션이 현대 액션 영화에 미친 영향은 이미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검토된 바 있습니다. IMDb의 레이드 페이지에는 이 영화가 전 세계 액션 팬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으며, 평론가 로저 이버트 역시 이 영화의 액션 설계를 두고 "최근 수십 년간 본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 액션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레이드 이후 어떻게 볼 것인가 — 이 영화가 남긴 기준점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다른 액션 영화를 보기가 불편했습니다. 비교가 되어버리니까요. 특히 CG에 의존하는 화려한 슈퍼히어로 액션을 볼 때 이 영화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레이드는 편집 컷(Edit Cut)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집니다. 편집 컷이란 하나의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는 단위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불필요한 컷이 거의 없습니다. 타격이 일어나기 직전, 그리고 직후를 절묘하게 잘라내어 관객의 뇌가 가장 강렬하게 반응하는 순간만 남겨놓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께 제가 권하는 감상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 번째 감상에서는 스토리 구조보다 공간의 변화를 따라가십시오. 1층부터 위로 올라가는 구조가 압박감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확인하시면 감독의 의도가 보입니다.
- 두 번째로는 야얀 루히안의 발놀림에 집중하십시오. 상체 공격에 시선이 빼앗기기 쉬운데, 발이 항상 먼저 움직입니다. 실랏의 보법이 어떻게 격투 흐름을 지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세 번째로는 사운드만 들어보십시오. 영상 없이 소리만 들어도 지금이 총격전인지 맨손 격투인지 칼 싸움인지 구분됩니다. 그만큼 음향 설계가 정교합니다.
- 네 번째는 형 안디(도니 알람시아 분)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의 장면을 다시 보십시오. 복선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 두 번째 감상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보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극적 경험을 통해 억압된 감정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상태를 말합니다. 레이드: 첫번째 습격이 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식은 거창한 메시지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가 한계까지 밀렸을 때 만들어내는 물리적 에너지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보고 나서 뭔가 시원한 느낌이 남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속편인 레이드 2는 규모와 서사 면에서 전편을 크게 확장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첫 번째 작품의 밀도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은 걸 만들어낸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레이드를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당장 거실 불 끄고 볼륨 올리고 시작하십시오.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