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억 1,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해 SF 액션 흥행 상위권을 차지한 작품이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입니다. 이 숫자를 처음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기억을 팔고 사는 회사, 화성의 독재 권력, 조작된 정체성이라는 소재가 30년 전 관객들에게 이 정도 규모로 먹혔다는 사실이 지금 봐도 흥미롭습니다.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만들어낸 날 것의 공포
이 영화가 CG(컴퓨터 그래픽)가 본격 도입되기 직전,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특수분장 감독 롭 보틴이 이끈 팀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특별 업적상을 수상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란 로봇공학과 기계 장치를 결합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특수 인형이나 모형을 제작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퀘이드가 뚱뚱한 여성 마스크를 쓰고 화성 검문소를 통과하다 얼굴이 갈라지며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이 애니마트로닉스 기술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밤이었는데, 조명을 낮추고 봤던 탓인지 진짜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디컴프레션 효과(Decompression Effect)란 대기압이 급격히 낮아질 때 신체가 받는 극단적인 물리적 충격을 시각화한 표현으로, 화성의 대기에 그대로 노출된 인체가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풀어 오르는 장면에 쓰인 기법입니다. 지금 보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투박한 아날로그 질감이 미래 사회의 비정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매끈한 CG였다면 오히려 그 불쾌한 현실감이 희석됐을 것 같습니다.
고어(Gore) 표현, 즉 신체 훼손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잔인한 연출 방식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은 <스타쉽 트루퍼스>나 <원초적 본능>에서도 그랬듯, 이 영화에서도 폭력의 결과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잔인한 장면이 불편하신 분들이라면 이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기억 조작이라는 소재, 필립 K. 딕에서 버호벤까지
<토탈 리콜>의 원작은 SF 문학의 거장 필립 K. 딕(Philip K. Dick)이 1966년 발표한 단편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입니다. 필립 K. 딕은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수많은 SF 영화의 원작자로,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의 진실성에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 작가입니다. 이 맥락을 알고 영화를 보면 단순한 액션 오락물이 아니라는 것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영화 속 리콜(Recall)사는 실제로 화성에 가지 않아도 화성 여행의 기억을 뇌에 직접 이식해 주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이유는, 현재 신경과학 분야에서 기억 이식 연구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기억 형성과 복원을 돕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에 투자해 왔습니다. (출처: DARPA, Restoring Active Memory 프로그램) 1990년 영화가 그린 상상이 30년 뒤 실제 연구 의제가 됐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버호벤 감독이 원작 소설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억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었습니다. 컴퓨터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저로서는, 이 소재가 유독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실제 경험인지, 누군가 심어 놓은 데이터인지를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면 정체성의 근거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각본을 완성한 론 슈세트는 이 불안감을 영화 전반에 걸쳐 교묘하게 심어 두었습니다. 퀘이드가 리콜사 직원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하나를 보고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직감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제가 본 SF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날카로운 연출이었습니다.
열린 결말이 던지는 질문, 꿈인가 현실인가
이 영화를 한 편의 팝콘 무비로 볼 수도 있지만, 결말까지 본 뒤에는 그렇게만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영화의 구조적 핵심은 바로 이 열린 결말(Open Ending)에 있습니다. 열린 결말이란 서사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해석에 의미를 위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후반부에 리콜사 직원이 퀘이드 앞에 나타나 이렇게 경고합니다. "당신은 지금 꿈속에 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어 식물인간이 될 것입니다." 관객은 이 순간 멈추게 됩니다. 퀘이드가 경험한 화성 여행 전체가, 리콜사가 팔았던 '비밀 요원 패키지' 상품의 내용물이었을 가능성이 열립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에서 한 번 의심이 시작되면 그 이전 장면들이 전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합니다.
결말에서 화성의 테라포밍(Terraforming) 장치가 가동됩니다. 테라포밍이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행성의 환경을 지구와 유사하게 인공적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외계 고대 문명이 남긴 장치가 작동하면서 메마른 붉은 행성에 산소가 공급되고, 퀘이드와 멜리나는 새로 생겨난 푸른 하늘 아래 키스를 나눕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바로 이 장면이 리콜사가 퀘이드에게 판매했던 상품 이름 '화성의 푸른 하늘(Blue Sky on Mars)'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것이 진짜 해피엔딩인지, 아니면 가상현실 프로그램의 엔딩 크레딧인지를 영화는 끝까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가 작곡한 오케스트라 스코어는 이 장면에서 웅장함과 불길함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황홀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저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2012년 렌 와이즈먼 감독의 리메이크작과 비교해서도 여전히 독보적인 이유는 바로 이 열린 결말의 서사적 긴장감 때문입니다. 리메이크작은 더 세련된 비주얼을 가졌지만, 이 철학적 여운만큼은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캐릭터 데칼코마니로 읽는 버호벤의 풍자
폴 버호벤이 이 영화에서 단순히 폭발과 총격을 연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물 구조 자체가 자본주의와 권력에 대한 냉소적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선명한 예가 로리(샤론 스톤 분)와 멜리나(레이첼 티코틴 분)의 대비입니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a)는 원래 미술 기법에서 온 단어지만, 서사 분석에서는 두 인물이 표면적으로 대칭을 이루면서 실은 전혀 다른 본질을 드러내는 구조를 설명할 때 쓰입니다. 로리는 다정한 아내의 외형 속에 차가운 감시자를 숨겼고, 멜리나는 거칠고 불친절한 외형 속에 진심을 숨겼습니다. 버호벤은 이 두 인물을 통해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는 메시지를 캐릭터 설계 단계부터 심어 두었습니다.
샤론 스톤은 당시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원초적 본능>이 1992년 개봉이니, 이 영화 이후 2년 만에 그녀가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로리가 퀘이드에게 총을 겨누며 "이건 이혼 선물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 서늘한 유머 감각에 실제로 웃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냉소적 농담을 던지는 버호벤 특유의 감각이 잘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메인 빌런 코하겐(로니 콕스 분)은 화성의 공기를 독점 통제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인물입니다. 공기라는 생존 필수 자원을 기업이 독점하는 디스토피아 설정은 지금의 기후 위기와 자원 독점 논쟁을 예고한 것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1990년에 이 설정을 만들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