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처음 볼 때 클래식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루는 아름다운 음악 영화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이 영화는 제가 지금껏 본 전쟁 영화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작 <피아니스트>는 실존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바르샤바 게토의 참상을 담담하고도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바르샤바 게토, 그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게토(Ghetto)라는 단어를 그저 소수 집단이 모여 사는 구역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그런 맥락으로도 쓰이니까요. 그런데 영화 속 바르샤바 게토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게토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외부와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설치한 봉쇄 구역을 뜻합니다. 철창은 없었지만, 높은 벽과 검문소로 둘러싸인 사실상의 감옥이었습니다.
영화는 1939년 독일군의 폴란드 점령 직후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은 당시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독일군이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쇼팽을 연주하던 그가, 다윗의 별(Star of David) 표식을 팔에 달고 거리를 걷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빠르게 현실을 바꿔놓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별 표식이란 나치가 유대인을 식별하고 차별하기 위해 강제로 착용하게 한 육각형 별 모양의 휘장으로, 그 자체가 공개적인 낙인이었습니다.
제가 특히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은 슈필만 가족이 피난 짐을 꾸리는 대목이었습니다. 빨간 드레스를 가져갈지 말지, 가족사진을 챙길지 말지 고민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얼마나 잔인하게 무너지는지를 영화는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는 총성과 폭발로 공포를 표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로 공포를 쌓아 올립니다. 제 경험상 그 방식이 훨씬 더 오래 남습니다.
역사적 맥락을 짚자면, 바르샤바 게토는 1940년 11월 공식 봉쇄되었으며 최대 약 46만 명의 유대인이 밀집 수용되었다가 1942년부터 트레블링카 절멸 수용소로 강제 이송이 시작되었습니다(출처: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SHMM)).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을 과장 없이 따라가기 때문에, 보는 내내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문법을 비교해보면 이 작품이 다른 이유가 보입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뜻합니다. 역사에서 인류가 스스로에게 저지른 가장 극단적인 범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룬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여러 편이 있는데, 저는 <피아니스트>를 보기 전까지 그 영화들이 이 소재를 충분히 소화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미장센(Mise-en-scène)의 방향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배경, 소품 등을 연출가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많은 전쟁 영화들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음악을 키우고 클로즈업을 반복하는 방식을 씁니다. 하지만 폴란스키 감독은 카메라를 일정한 거리에 고정시키고, 참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포착합니다. 감정을 쥐어짜지 않는데, 오히려 더 무겁게 남습니다.
이 영화의 연출적 성취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잉 신파 없는 냉정한 관찰자 시점 — 카메라가 울지 않으니 관객이 스스로 울게 됩니다.
- 애드리언 브로디의 신체적 서사 — 14kg 감량으로 구현한 기아와 고립의 육체. 말보다 몸이 먼저 말하는 연기입니다.
- 쇼팽 발라드 1번(Ballade No. 1 in G minor)의 전략적 배치 —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존재 증명으로 기능합니다.
- 폴란스키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 투영 — 어린 시절 크라쿠프 게토에서 생존한 그의 시선이 곧 카메라의 시선입니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 역할로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미국 아카데미(AMPAS) 공식 홈페이지). 저는 그가 수상 소감에서 할 말을 잃고 감독을 껴안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연기가 아닌 생존 자체를 연기한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에서 군인이나 저항군이 주인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싸우지 않습니다. 슈필만은 총을 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살아남으려 합니다. 제 경험상 그 수동성이 오히려 관객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더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으니까요.
쇼팽 발라드가 흐르던 그 장면, 예술이 실제로 사람을 살린 순간
영화의 후반부, 슈필만은 폐허가 된 바르샤바의 한 건물 안에 홀로 숨어 지냅니다. 돕던 사람들은 하나씩 떠나거나 사라졌고, 배고픔과 추위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순간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Wilm Hosenfeld)가 건물에 들어서고, 슈필만은 발각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시작될 때 솔직히 이제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호젠펠트는 그의 신분을 묻고, 슈필만은 "피아니스트"라고 답합니다. 장교는 증명하라는 듯 폐허 속 먼지 쌓인 피아노 앞에 그를 앉힙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쇼팽 발라드 1번. 손가락이 얼어있고, 건반의 일부는 망가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 선율은 부서진 벽과 유리 파편 위로 조용히 번집니다. 이 시퀀스(Sequence)는 영화에서 장면과 장면이 연결된 하나의 서사 단위를 뜻하는데,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의 의미를 한 번에 압축합니다.
빌름 호젠펠트는 그 이후 슈필만에게 식량을 가져다주고, 마지막에는 군용 코트까지 건네고 떠납니다. 실제 역사에서 호젠펠트는 여러 유대인의 탈출을 도왔으며, 그 공로로 2009년 이스라엘 야드 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추모관으로부터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으로 추서되었습니다. 열방의 의인이란 나치 점령 하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면서도 유대인을 구한 비유대인에게 수여되는 칭호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사실 음악 그 자체보다, 그 음악을 둘러싼 인간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유대인 경찰직 제안을 거절한 슈필만 가족, 목숨을 걸고 슈필만을 숨겨준 야니나와 도로타, 그리고 적군의 피아니스트 앞에서 총 대신 빵을 들고 돌아온 호젠펠트.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겁게 남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면,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실에서 규칙을 가르치고, 저녁에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자서전 원제가 <도시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뒤에야 그 무게가 비로소 느껴졌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아름다운 음악을 기대하고 틀었다가 전혀 다른 종류의 울림을 가져가게 되는 영화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조용한 밤에 혼자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