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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공권력 한계, 수사 허점, 연쇄살인)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엉뚱하게도 남자 허벅지 근육과 성 기능 이야기가 나왔고, 그게 어쩌다 보니 영화 추격자 속 범인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본 영화인데,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눈에 걸렸습니다. 특히 군 복무 시절 수사 업무를 오랫동안 경험했던 저로서는 화면 속 경찰과 검찰의 행동 하나하나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로 치닫게 만들었습니다.

마포 연쇄살인과 영화 추격자의 배경

영화 추격자는 2008년 나홍진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과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실제로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서울 마포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당시 사건은 범인이 성적 콤플렉스를 지닌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영화는 그 서사를 출장안마 업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와 연쇄살인마 지영민이라는 두 인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직장 동료가 식사 자리에서 꺼낸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허벅지 내전근(內轉筋, adductor muscle)이란 허벅지 안쪽에 위치한 근육군으로, 음경 주변의 혈류 순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근육이 약한 남성은 다리를 벌리는 자세가 습관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의학적 연구 결과를 인용한 설명이었습니다. 지영민이라는 캐릭터가 성적 불능에 대한 콤플렉스를 내면 깊숙이 숨긴 채 살인으로 그것을 대리 충족했다는 해석과 맞닿아 있어서, 그날 대화가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솔직히 그런 연결 고리를 그 자리에서 바로 떠올릴 줄은 몰라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핵심 구조는 범죄 스릴러에서 흔히 쓰이는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후더닛(whodunit) 공식을 처음부터 뒤엎는 데 있습니다. 후더닛이란 영어권 추리 장르에서 '범인 찾기'를 중심 장치로 삼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뜻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 시작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범인을 관객에게 공개하고, 이후 이야기를 "잡아도 증거가 없어서 놔줘야 하는 시스템의 모순"으로 완전히 틀어버립니다. 처음 이 구조를 접했을 때 저도 꽤 당황했습니다. 범인을 이렇게 일찍 보여줘도 되나 싶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영화 속 수사 허점,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

군 복무 시절 수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경찰, 검찰, 군 검찰, 국정원 수사관들과 업무 교류를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제가 꼽은 가장 큰 수사 허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공권력의 우선순위 왜곡: 엄중호가 동료 경찰에게 지원을 요청했을 때, 경찰 병력 전체가 서울시장 행사 경호에 투입되어 일반 시민의 신고를 묵살했습니다. 경찰관 한두 명만 동행했어도 사건은 훨씬 일찍 매듭지어졌을 것입니다.
  2. 기초 전산조회 생략: 지영민을 붙잡은 직후, 경찰은 전과자 조회조차 하지 않고 진술에만 의존했습니다. 범죄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반복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전산조회 한 번이면 중호의 말이 훨씬 신뢰성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3. 피해자 생존 가능성 무시: 영민이 경찰차 안에서 "미진이 아직 살아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경찰은 이를 허위 진술로 단정하고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 마당에는 노부부의 시신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즉시 현장을 확인했다면 현행범 체포 및 구속 영장 청구도 가능했습니다.
  4. 수색 범위의 비논리성: 시체 유기 장소를 추정하면서 정작 집 마당은 공간이 좁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고, 엉뚱한 산과 석재공장만 대규모로 수색했습니다. 협소한 공간이라도 최소 인원으로라도 동시에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5. 단독 미행의 위험성: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영민을 감시하면서 담당 여성 경찰관 한 명만 보냈습니다. 미행의 기본 원칙은 2인 1조입니다. 한 사람이 계속 따라붙으면 얼굴이 노출될 위험이 있고, 살인마를 상대로 단독 여성 수사관을 투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세 번째였습니다. 수사기관이라면 피의자의 진술이 허위든 진실이든 일단 확인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수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경찰과 검사는 언론에 보도될 시장 경호 실패와 기관 이미지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미진이 살아있다고 믿은 사람은 엄중호 단 한 명뿐이었고, 결국 그 한 명의 집념이 이 영화의 전부였습니다.

참고로 영화에서는 피의자를 체포한 때부터 12시간 이내에 구속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48시간 이내로 변경되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체포된 피의자의 구금 한계와 영장 청구 기준은 더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국가법령정보센터 형사소송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추격자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경종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는 장면은 화려한 추격 시퀀스가 아니었습니다. 미진의 어린 딸 은지의 손을 잡고 "내가 데려올게"라고 약속하는 엄중호의 표정이었습니다. 돈밖에 모르던 악덕 업자가 그 순간만큼은 진짜 사람이 되는 장면인데, 저는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감정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 장르란 감정을 절제한 채 냉혹한 현실을 거칠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문학·영화 양식을 뜻합니다. 추격자는 그 하드보일드 미학 위에 한국 사회 특유의 관료주의적 무능함과 공권력의 우선순위 왜곡 문제를 날카롭게 얹어놓았습니다. 그게 단순한 오락 스릴러와 이 영화를 구분 짓는 지점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예술 작품이 관객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시켜 주는 심리적 정화 작용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정의한 개념인데, 추격자가 16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이 카타르시스의 질이 높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실패하는 순간, 개인의 집념 하나가 얼마나 절박하고 처절해질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한국 범죄 스릴러의 흐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추격자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 공권력에 비판적 시선을 담은 범죄 수사물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쟝센(mise-en-scène)이란 영화에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동선, 조명, 세트, 소품을 아우르는 연출 개념인데, 촬영감독 이성제가 망원동의 가파른 골목길을 다큐멘터리적 질감으로 포착해 낸 방식은 이후 한국 범죄 영화의 미쟝센 교과서로 자주 인용됩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가 군에서 수사 업무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수사관의 가장 큰 적은 범죄자가 아니라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안이함이라는 것입니다. 영화 속 경찰들이 저지른 실수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현실에서도 비슷한 안이함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추격자는 그 불편한 진실을 오락의 형식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데 성공한 영화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묻는 건 단순합니다.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추격자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되실 겁니다. 이미 보셨다면 이번엔 엄중호가 아닌 경찰과 검사의 행동에 집중해 다시 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