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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시나리오, 로맨틱코미디, 영화분석)


영화를 그냥 보는 것과 시나리오 작가의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재미있겠다 싶어서 틀었는데, 어느 순간 "아, 이 장면이 이래서 여기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왔습니다. 2003년작 <10>이 그 첫 번째 영화였습니다.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해보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만 해도, 영화 보는 방식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영화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틀어놓고 딴 생각을 하거나 그냥 시간 때우는 용도로 봤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법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지, 주인공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갈등 구조(conflict structure)는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갈등 구조란 이야기 안에서 인물들이 서로 부딪히고 긴장감이 발생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걸 의식하고 보기 시작하면 영화 한 편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관객이 아니라 해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확실히 관점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로맨틱코미디를 작가의 시선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10>이 그 출발점이 되어주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고 두 번 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로맨틱코미디의 구조가 이렇게 단순명료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치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앤디 앤더슨(케이트 허드슨 분)은 여성 잡지 칼럼니스트로서 '10일 안에 남자에게 차이는 방법'을 직접 실험해야 하고, 벤자민 배리(매튜 맥커너히 분)는 광고 계약을 따내기 위해 '10일 안에 어떤 여자든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두 사람의 목적이 정반대이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 갈등 장치입니다.

시나리오 작법에서 이런 장치를 아이러니 구조(irony structure)라고 부릅니다. 아이러니 구조란 인물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다가 그 행동이 오히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사 기법입니다. 이 영화가 바로 그 전형입니다. 속이려고 만났는데 진심이 생겨버리는 것, 그것 자체가 이야기의 힘입니다.

제가 직접 이 구조를 의식하며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앤디가 남자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일부러 해나가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분홍색 앨범을 만들어 가져오고, 반려식물을 '우리 아기'라며 들고 다니고, 농구 경기 중에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장면들. 보면서 "아오, 나였으면 바로 찼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참아내는 벤의 행동이 오히려 그를 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줍니다.

시나리오 작법에서는 이를 캐릭터 리빌(character reveal)이라고 합니다. 캐릭터 리빌이란 인물의 본모습이 극한의 상황이나 압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장면을 설계하는 기법입니다. 벤이 앤디의 모든 황당한 행동을 참아내면서 오히려 그의 진짜 매력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작가가 이걸 의도하고 설계한 것이 영화를 보면서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란 드레스와 농구장, 그리고 진심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갈라 파티 장면에서 케이트 허드슨이 노란색 백리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순간은 솔직히 말해서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그 장면이 단순한 패션 연출이 아니라, 앤디라는 인물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드러내는 장치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아챘습니다. 그 전까지 앤디는 계속 엉뚱하고 과도한 행동으로 자신을 가렸는데, 그 드레스 장면에서 처음으로 '이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가'가 보입니다.

농구 경기장 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앤디가 벤을 질리게 하려고 경기 내내 말을 걸고 방해를 하는데, 그 소동 속에서 둘이 함께 웃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작가가 이 순간을 아주 정교하게 계산해 넣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연기가 아닌 감정'을 공유하는 지점, 그것이 농구장이었습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에서 이런 장면을 전환점(turning point)이라고 부릅니다. 전환점이란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인물의 감정이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그 전환점을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웃음과 소동 속에 심어두었습니다. 이게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라고 봅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학술적 분석에 따르면(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관객이 가장 몰입하는 구간은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진심을 공유하는 순간이며, 이 장면의 설계 방식이 영화 전체의 감정 흐름을 좌우합니다. <10>은 그 순간을 코미디적 상황 속에 숨겨두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이 이 영화를 200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대표작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시나리오 작가의 눈으로 본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 혹은 그냥 재미있게 봤는데 뭔가 더 얻고 싶다는 분들에게 제가 직접 써봤는데 효과 있었던 방법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이야기는 어떻게 굴러갈까?"를 먼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측이 맞든 틀리든, 작가의 선택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2. 주인공이 무언가를 '참는' 장면에 주목하십시오. 그 참음 속에 캐릭터의 진짜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3.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웃음을 함께 나누는 장면을 찾아보십시오. 그게 이야기의 실질적인 전환점입니다.
  4. 엔딩 직전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을 다시 보십시오. 작가가 의도한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적 긴장이 해소되면서 관객이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뜻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속임수를 알게 된 뒤, 벤이 오토바이를 타고 맨해튼 다리 위를 달려 앤디의 택시를 막아서는 장면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진심이 폭발하는 그 순간이 이 영화 전체의 카타르시스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CG 없이도, 특수효과 없이도 사람을 붙잡아두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의 정체가 뭔가 궁금했는데, 시나리오 작가의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담백하기 때문입니다. 양념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맛인지 모르는 음식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 같은 영화입니다. 로맨틱코미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가 좋은 교재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나리오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로도(출처: IMDb) 이 영화는 꾸준히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보는 것을 권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고, 두 번 모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한 번은 관객으로, 한 번은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같은 영화인데 두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의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왜 이 장면이 여기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만 품고 보면 됩니다. 그 질문이 영화 보는 즐거움을 완전히 바꿔줄 것입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happylittlerich/221286689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