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 영화는 전작보다 재미없다는 말, 정말 항상 맞을까요? 제가 직접 확인해봤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숀 레비 감독의 2009년작 박물관이 살아있다 2(Night at the Museum: Battle of the Smithsonian)는 세계 최대 박물관 스미소니언을 무대로, 악당 파라오 카문라의 세계정복 야욕에 맞서는 래리 데일리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어드벤처 속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내던 모험심이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속편은 전작을 못 넘는다는 공식, 이 영화는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속편 영화는 전작의 성공에 기댄 채 스케일만 키우고 내용은 비슷하게 반복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박물관이 살아있다 2는 이 공식을 제법 성실하게 깨뜨린 작품입니다. 무대 자체를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통째로 바꾼 것부터가 그냥 넘길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단일 기관이 아니라 워싱턴 D.C.와 뉴욕 일대에 19개 시설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복합체입니다. 항공우주관, 자연사관, 미술관까지 포함하는 이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덕분에,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 있는 물리적 범위가 전작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실제로 스미소니언의 소장 유물만 1억 5천만 점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출처: Smithsonian Institution 공식 사이트), 그 거대한 공간에 마법의 석판이 풀리는 순간 전시물 전체가 동시에 깨어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장소만 바꾼 게 아니라 인물의 내적 동기 자체를 리셋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진짜 속편의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1편에서 야간 경비원이었던 래리는 2편 시작 시점에 경비 관련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운 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뭔가 빠진 느낌, 그 공허함이 이야기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스미소니언 한복판에서 벌어진 카문라와의 싸움
자연사 박물관이 리뉴얼에 들어가면서 전시물 절반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보관창고로 이송됩니다. 문제는 마법의 힘을 가진 아판의 석판도 함께 딸려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판의 석판(Tablet of Ahkmenrah)이란 이집트 파라오 아크멘라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 야간에 주변 전시물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 도구입니다. 이 석판의 힘이 스미소니언 전체로 퍼지자, 그곳에 보관돼 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 카문라가 깨어납니다.
카문라의 목표는 석판의 힘으로 지옥의 문을 열어 악의 군단을 부활시키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석판의 암호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암호 해독을 위해 래리가 찾아간 인물이 바로 아인슈타인 인형 전시물이었고, 답은 원주율(π), 즉 3.141592였습니다. 이 장면이 제가 직접 보면서 예상 밖이었던 부분인데, 세계정복 야욕을 가진 악당의 최종 암호가 수학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숫자라는 반전이 꽤 재치 있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관객이 극 중 갈등의 해소 과정을 경험하며 감정적 해방감을 느끼는 현상을 뜻합니다. 링컨 기념관의 거대한 링컨 석상이 걷어 나와 악의 군단을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장면은 그 카타르시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거대한 링컨 동상이 실내를 걸어 다닌다는 설정이 황당할 수 있는데, 막상 화면으로 보니 그냥 통쾌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속편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운 배경과 확장된 세계관: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스미소니언 전체로 무대를 확장
- 신선한 빌런 캐릭터: 단순한 반복이 아닌 카문라라는 고대 파라오 악당 도입
- 주인공의 내적 성장 서사: 성공 이후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래리의 심리 변화
- 새로운 조력 캐릭터: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등장
아멜리아 에어하트, 전시물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진 이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사실 카문라와의 싸움이 아니라,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 전시물 캐릭터였습니다. 실제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1928년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1937년 세계 일주 비행 도중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된 인물입니다(출처: History.com). 영화 속 아멜리아는 그 실제 인물이 지녔던 도전 정신과 호기심을 꽤 충실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아멜리아는 박물관 전시물임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것에 눈을 빛내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먼저 달려드는 캐릭터입니다. 래리가 성공에 안주하며 잃어버린 것을 그녀는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 대조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줬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위치 등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를 통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멜리아와 래리가 흑백 사진 프레임 속으로 함께 뛰어드는 시퀀스는 미장센 측면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 중 하나였는데, 컬러 화면과 흑백 화면의 대비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상기시켜 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시각적 장치 하나가 대사 열 줄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아멜리아는 해가 뜨기 전에 래리와 자연사 박물관 전시물들을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고 혼자 박물관에 남습니다. 전시물이기 때문에 현실의 삶을 함께할 수 없다는 설정이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진 건, 두 캐릭터가 그 전까지 감정적으로 충분히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래리가 회사를 팔아서 박물관에 기부한 선택, 어떻게 볼 것인가
일반적으로 이 영화의 결말은 훈훈한 해피엔딩으로만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래리의 마지막 선택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꽤 구체적인 가치관의 표명이었습니다. 래리는 스미소니언에서의 대모험을 마친 뒤 자신이 일구어낸 회사를 매각하고, 그 돈을 자연사 박물관에 기부합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전시물들을 원래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자연사 박물관은 야간 운영 방식을 바꿉니다. 전시물들이 스스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야간 투어를 시작한 것인데, 관람객들은 그것을 CG(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구현한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CG란 컴퓨터로 생성한 시각 이미지를 실제 화면과 합성하는 영상 기술을 말합니다. 관람객들이 마법을 기술로 오해한다는 이 아이러니가 오히려 이야기를 더 따뜻하게 마무리해 줬습니다.
편집(editing)이란 영화에서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여 리듬과 감정의 흐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영화의 피날레는 래리가 박물관 야간 투어 안내를 직접 맡으며 관람객들 사이에서 전편과 닮은 여성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 마지막 편집의 호흡이 성공에 안주하다가 다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돌아온 래리의 여정을 깔끔하게 닫아줬습니다. 저는 이 엔딩을 보면서 잠깐 내가 지금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2는 속편이 실망스럽다는 선입견을 검증해보려고 다시 꺼내든 영화였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 선입견은 이 작품에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스미소니언이라는 거대한 공간, 카문라라는 개성 있는 빌런, 아멜리아 에어하트라는 매력적인 조력자, 그리고 래리의 내적 성장까지 네 가지가 고르게 맞물렸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만 쫓는 영화에 지쳐 있다면, 이 작품이 꽤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