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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 3 (히든 월드, 이별 서사, 라이트 퓨리)


애니메이션 완결편이 원작의 감동을 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극장에서 드래곤 길들이기 3를 처음 봤을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0년짜리 이야기가 이렇게 끝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히든 월드, 도망이 아닌 귀환이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히컵이 버크 섬을 떠나는 결정을 다소 갑작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 비로소 보이더군요. 히컵이 히든 월드(Hidden World)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피난이 아니라, 아버지 스토이크가 오래전에 심어놓은 씨앗이 마침내 발아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을요.

히든 월드란 지도 밖 바다 끝 폭포 너머에 존재하는 드래곤들만의 지하 낙원입니다. 빛 한 줄기 닿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지하에 형광 버섯과 수정들이 만들어내는 색채는, 제가 지금껏 애니메이션에서 본 배경 중 가장 압도적이었습니다.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 기술, 즉 빛의 반사와 굴절을 물리 법칙에 따라 시뮬레이션하는 렌더링 방식이 이 장면에서 극한까지 활용된 덕분입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기술팀이 히든 월드의 발광 생태계를 묘사하기 위해 생체발광(Bioluminescence), 즉 생물이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을 참고했다는 점도 직접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히컵 일행이 새로운 섬에 잠시 정착하고, 발카가 그림멜 일행의 추격을 확인하고, 결국 드래곤들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흐름은 제가 보기에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후반부 전개가 빠르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압축된 속도감이 이별의 불가피함을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느꼈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전체의 세계관 설정에 대해서는 드림웍스 공식 사이트에서도 일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작진이 어떤 의도로 히든 월드를 시리즈의 종착점으로 설계했는지 인터뷰 자료를 찾아 읽었을 때, 처음 극장에서 받은 감동의 이유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투슬리스와 라이트 퓨리의 이별 서사가 진짜 핵심입니다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 논리적 사고를 가르치는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됐을 때, 라이트 퓨리(Light Fury)와 투슬리스의 구애 시퀀스가 예상보다 훨씬 정교하게 설계된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 구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투슬리스가 내더들의 구애 행동을 따라 모래 위에 라이트 퓨리의 얼굴을 그리는 장면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 즉 그림 그리는 능력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라이트 퓨리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인간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보입니다. 히컵과 아스트리드를 발견하자마자 공격하고, 브레스로 몸을 투명하게 숨긴 뒤 사라지는 장면에서 저는 그녀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독립적인 캐릭터임을 직감했습니다. 카무플라주 브레스(Camouflage Breath), 즉 자신의 브레스를 이용해 빛을 굴절시켜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은 라이트 퓨리가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협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별 서사의 무게는 후반부에 가서야 완전히 드러납니다. 히컵이 투슬리스의 안장을 풀어주는 클라이맥스 시퀀스에서, 저는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히컵의 표정보다 투슬리스의 눈빛을 더 오래 바라봤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같은 장면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의 층위가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그때 느낀 건, 이 영화가 히컵의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투슬리스가 알파 드래곤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딘 데블로이스 감독이 이 시리즈를 통해 일관되게 탐구한 것은 상호의존(Interdependence)과 자립(Independence) 사이의 긴장입니다. 상호의존이란 두 존재가 서로에게 기대어 기능하는 관계를 말하고, 자립이란 그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10년 여정은 결국 이 긴장을 아름답게 해소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존 파웰의 음악이 없었다면 절반의 감동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운드트랙을 따로 찾아 들은 건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존 파웰(John Powell)이 작곡한 스코어(Score), 즉 영화의 장면에 맞춰 제작된 음악 총체는, 이전 시리즈의 테마를 변주하면서도 이별이라는 감정에 맞게 조율되어 있습니다. 특히 에필로그 장면에서 흐르는 'Once There Were Dragons'는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시리즈 전체의 테마를 집약한 트랙인데,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영화 음악이 서사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는 실제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영화 음악과 감정 반응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미국 심리학회(APA)에서도 다수 확인할 수 있는데, 음악의 템포와 조성이 관객의 감정 몰입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일반적입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시각적 완성도만으로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다른 애니메이션 완결편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억지 해피엔딩 없이 이별 자체를 감동의 정점으로 설계했습니다.
  2. 라이트 퓨리라는 새 캐릭터가 투슬리스의 독립을 촉진하는 역할로만 기능하지 않고, 그 자체로 서사적 무게를 가집니다.
  3. 에필로그에서 세월이 지난 히컵과 투슬리스의 재회 장면이 열린 결말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마침표가 됩니다.
  4. 존 파웰의 음악이 장면 전환마다 감정을 밀어올리는 방식이 시리즈 전편 대비 가장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멜이라는 악당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전작의 드라고와 비교했을 때 그림멜은 위협의 스케일보다 개인기가 앞서는 인물인데, 저는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의 진짜 갈등이 히컵과 그림멜 사이가 아니라 히컵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있다는 것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 영화의 선택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3는 완결편이 갖춰야 할 것들을 거의 다 갖춘 작품입니다. 이별을 다루면서도 슬프기만 하지 않고, 성장을 이야기하면서도 교훈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1편과 2편을 먼저 보신 뒤에 보시길 권합니다. 히컵이 처음 투슬리스를 길들이던 장면을 기억한 채로 마지막 안장을 푸는 장면을 보면, 그 무게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qhrjtmhey/22342645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