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란 사자가 야생에 던져지면 어떻게 될까요. 본능이 살아날까요, 아니면 그냥 굶어 죽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2005년작 마다가스카를 두 번 연속으로 다시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단순한 오락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틀을 꽤 단단하게 깨뜨립니다.
뉴요커 4인방, 그들이 동물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스타 사자 알렉스는 관중의 환호 속에서만 존재 이유를 찾는 캐릭터입니다. 벤 스틸러가 목소리를 맡은 이 사자는 매일 같은 쇼를 반복하면서도 그 삶에 완전히 만족합니다. 그에 반해 얼룩말 마티는 다릅니다. 크리스 록 특유의 리드미컬한 말투를 그대로 입힌 마티는 '코네티컷의 들판'을 꿈꾸며 자신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을 그리워합니다. 저는 이 대비가 영화의 진짜 심장이라고 봅니다.
마티가 정체불명의 펭귄들의 꼬임에 넘어가 동물원 탈출을 감행하고, 알렉스와 기린 멜먼, 하마 글로리아가 친구를 찾아 도시로 뛰쳐나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은 일반적으로 단순한 설정 장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발단 구조가 굉장히 치밀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탈출을 계획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탈출자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그게 이 영화가 처음부터 던지는 첫 번째 반전입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이 작품에서 구사한 캐릭터 조형(character design)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캐릭터 조형이란 인물의 외형적 형태와 성격을 하나의 일관된 시각 언어로 통합하는 제작 과정을 뜻합니다. 알렉스의 근육질 실루엣과 무대 스타 특유의 과장된 포즈, 멜먼의 길쭉하고 불안한 몸선은 각 캐릭터의 심리를 말 한마디 없이도 읽히게 만듭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알고리즘의 기초를 가르칠 때 이 영화의 캐릭터별 행동 패턴을 예시로 쓴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즉각적으로 이해했을 정도로 각 인물의 동기 구조가 명확합니다.
야생 적응의 실패와 성공 사이, 알렉스의 포식 본능이 드러날 때
이 영화가 단순한 동물 모험물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중반부입니다. 마다가스카 섬에 표류한 알렉스가 고기를 먹지 못해 점점 본능이 깨어나면서 친구 마티를 먹잇감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장면,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서사적 긴장을 넣을 줄은 몰랐거든요.
여기서 영화는 '야생성(wildness)'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야생성이란 문명 환경에서 억압되었던 생물 본래의 생존 충동이 원래 서식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다시 활성화되는 속성을 말합니다. 알렉스의 야생성이 활성화되는 장면은 코미디 톤 안에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꽤 묵직합니다. 길들여진 존재가 자신의 본성과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라는 질문이죠.
에릭 다넬과 톰 맥그라스 감독이 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알렉스는 포사(fossa)라는 마다가스카 섬의 실제 포식자 무리에게 위협받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본능을 역으로 활용합니다. 포사란 마다가스카 섬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포식 동물로, 실제로 여우원숭이의 천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친구를 공격하려던 충동을 적에게 돌리는 이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제가 본 가족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감정 밀도가 높은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마다가스카 영화가 보여주는 야생 적응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안락한 환경에서 형성된 사회적 정체성이 낯선 환경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단계
- 억압되었던 생물적 본능이 표면으로 올라오면서 내적 갈등이 극대화되는 단계
- 본능과 관계 사이에서 능동적 선택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단계
이 세 단계는 실제로 동물행동학(ethology)에서도 유사한 관점으로 다뤄집니다. 동물행동학이란 동물의 행동을 진화적, 생태적 맥락에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인간의 돌봄 환경에서 생활한 동물이 야생에 방사되었을 때 적응에 실패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IUCN 국제자연보전연맹). 영화가 이 현실을 코미디 문법으로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이 단순한 아동용 오락물 이상이라고 판단합니다.
펭귄 특공대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반쪽이었다
일반적으로 마다가스카 하면 뉴요커 4인방의 야생 적응기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볼 때마다 펭귄 특공대 쪽에 시선이 더 쏠립니다. 이건 취향 차이일 수 있지만, 서사 구조 측면에서도 펭귄 파트는 분명한 기능을 합니다. 스키퍼를 중심으로 한 네 마리의 펭귄은 뉴요커 4인방과 정반대의 캐릭터 벡터를 가집니다. 문명으로 향하는 4인방과 달리, 이들은 처음부터 목적지와 계획이 있고, 실패해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한스 짐머가 음악 감수를 맡은 이 영화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도 놓칠 수 없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란 영화나 특정 공간에서 청각적으로 경험되는 음향 환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뉴욕 장면의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재즈 계열 음악과, 마다가스카 섬에 상륙한 후 흘러나오는 아프리카 타악기 기반의 리듬은 공간의 전환을 귀로 먼저 느끼게 만듭니다. 특히 여우원숭이 왕 킹 줄리엔이 등장하면서 폭발하는 'I Like to Move It'은 장면과 음악의 싱크로율(synchronization rate), 즉 영상과 음향이 감정적으로 맞물리는 정도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해 "내용이 밋밋하다"는 의견도 분명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 평가가 틀린 건 아닙니다. 1편은 2편이나 3편에 비해 세계관의 외연이 좁고, 뉴욕과 마다가스카라는 두 공간을 넘나드는 것 외에 드라마의 스케일이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이 영화의 결함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라고 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캐릭터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이야기여야 하니까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에서도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를 '캐릭터 중심 앙상블 코미디'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DreamWorks Animation 공식 사이트).
마다가스카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알렉스와 마티의 우정이 기억에 남는 건, 이 영화가 관계의 본질에 대해 꽤 솔직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생에서도, 도시에서도 결국 우리를 붙잡아 두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다시 볼 계획이 있다면 펭귄 특공대의 대사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습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tyughjb99/220082177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