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나온 픽사 애니메이션을 지금 봐도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아이와 함께 틀었다가, 96분 내내 소파에서 꼼짝 못 했습니다. 오래된 작품이라 그래픽이 촌스럽겠지 싶었는데, 그건 완전히 틀린 예상이었습니다. 벅스 라이프는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플릭이라는 캐릭터, 엉뚱함인가 혁신인가
아이들과 볼 만한 애니메이션을 찾다 보면, 주인공이 처음부터 완벽하거나 능력이 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벅스 라이프의 주인공 플릭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를 칩니다. 개미왕국 전체가 겨우내 공들여 모은 식량을 단 한 번의 실수로 절벽 아래로 쓸어버리는 장면에서, 솔직히 저도 '이 녀석, 어쩌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플릭의 특기는 발명입니다. 개미들이 손으로 하나씩 나르던 일을 기계 장치로 빠르게 처리하려 하지만, 대부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터집니다. 이걸 두고 단순한 개그 코드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플릭이 실패하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그의 방식에 맞춰진 적이 없기 때문이었거든요. 발명(invention)이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행위를 뜻합니다. 기존 질서 안에서는 종종 '사고'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플릭이 식량을 날려버린 직후, 개미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장 내쫓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됐는데'라는 식의 냉대였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혼자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다가 주변의 시선이 싸늘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 장면이 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픽사가 만든 이 개미 한 마리의 이야기가 어른에게도 통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플릭이 영웅을 찾으러 도시(다른 곤충들이 모여 사는 장소)로 떠나는 장면은, 공동체에서 밀려난 이단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러 나서는 서사적 전환점(narrative turning point)입니다. 이 전환점이란 이야기의 흐름이 결정적으로 바뀌는 순간을 말하며, 이 지점을 기준으로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플릭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호퍼의 지배 구조, 단순한 악당이 아닌 이유
호퍼(Hopper)를 그냥 무서운 악당으로만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캐릭터가 영화에서 가장 잘 설계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호퍼는 사실 식량이 필요해서 개미들을 압박하는 게 아닙니다. 영화 중반부에 직접 대사로 밝히죠. 자신들이 개미보다 수가 훨씬 적다는 걸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미들이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 계속 두려움으로 눌러야 한다고.
이건 단순한 악당의 욕심이 아닙니다.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헤게모니란 물리적 힘이 아니라 동의와 복종의 문화를 통해 지배가 유지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호퍼가 개미들에게 원하는 건 음식보다 복종의 습관이었고, 그걸 끊어내지 못하면 개미들은 영원히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진지해진 건, 이게 곤충 세계 이야기가 아니라 꽤 보편적인 권력의 작동 방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호퍼의 지배가 무너지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누군가 혼자 용감하게 싸워서가 아니라, 플릭의 말을 들은 개미들이 스스로 두려움의 틀을 깨는 순간입니다. 집단적 각성(collective awakening)이란 구성원들이 동시에 기존 질서에 의문을 품고 행동으로 옮기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장면을 아들과 함께 보면서, 아이가 "왜 개미들이 이제야 싸워요?"라고 묻던 게 기억납니다. 그 질문이 사실 영화의 핵심이었던 셈입니다.
픽사의 초기작들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단순한 선악 구도보다 사회 구조적 갈등을 담은 작품일수록 세대를 넘어 오래 사랑받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출처: Roper Center for Public Opinion Research) 벅스 라이프가 딱 그 경우라고 봅니다.
아래는 호퍼 캐릭터가 단순 악당과 구별되는 요소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 물리적 폭력보다 심리적 복종을 통해 지배를 유지한다
- 자신들의 수적 열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집요하게 두려움을 이용한다
- 식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식량을 바치는 의식(儀式)이 목적임을 스스로 밝힌다
- 클라이맥스에서 진짜 새에게 잡히는 결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의 도구(가짜 새)에 의해 패배하는 구조와 맞물린다
엉터리 서커스단이 보여준 연대의 의미
플릭이 도시에서 데려오는 벌레들은 원래 벼룩이(P.T. Flea)의 서커스단에서 쫓겨난 단원들입니다. 애벌레, 무당벌레, 대벌레, 흑거미, 사마귀까지 제각각인 이들을 플릭은 용병으로 오해하고, 서커스 단원들은 의뢰를 받은 줄 알고 개미왕국으로 따라옵니다. 서로 목적이 달랐는데 결과적으로 협력 관계가 형성되는 구조입니다.
이 부분을 두고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인생에서 만나는 좋은 팀이 처음부터 목적이 딱 맞아서 뭉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처음엔 오해와 엇갈림이 있었지만, 개미왕국에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장점이 드러나는 과정이 영화에서 꽤 자세히 묘사됩니다.
특히 무당벌레 프랜시스(Francis)가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장면은, 겉모습과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해체하는 서브 텍스트(subtext)를 담고 있습니다. 서브 텍스트란 대사나 행동의 표면 아래에 깔린 숨겨진 의미나 주제를 말합니다. 이 서브 텍스트들이 쌓여서 벅스 라이프가 단순한 어린이 영화 이상의 무게를 갖게 됩니다.
연대(solidarity)라는 단어도 짚고 싶습니다. 연대란 서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을 말합니다. 벅스 라이프에서 연대는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들이 뭉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어색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픽사 공식 채널과 IMDb 기록에 따르면 벅스 라이프는 1998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약 3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IMDb - A Bug's Life) 26년이 지난 지금도 리뷰 점수가 높게 유지되는 이유는, 이 연대의 서사가 시대를 타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벅스 라이프는 아이에게 틀어줬다가 제가 더 빠져든 영화입니다. 1998년 작품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래픽도 충분히 훌륭하고, 이야기 구조는 지금 나오는 많은 애니메이션보다 오히려 탄탄합니다. 아이와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왜 개미들이 무서워했을까", "플릭은 왜 혼자 나섰을까" 같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픽사 클래식을 아직 못 보셨다면, 벅스 라이프를 첫 번째로 권하고 싶습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2029gk/220236800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