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픽사가 2020년 내놓은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숫자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가벼운 판타지 애니메이션이겠거니 하고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 여운이 며칠이나 갔습니다.
자전적 서사: 감독의 실제 이야기가 영화의 심장이 된 이유
픽사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온워드는 특히 자전적 서사(autobiographical narrative)라는 측면에서 유독 묵직합니다. 자전적 서사란 창작자 본인의 실제 경험이나 감정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는 서술 방식을 뜻합니다. 댄 스캔론 감독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형과 함께 자란 일상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냥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진짜 결핍과 진짜 그리움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소심하고 규칙적인 동생 이안과, 마법 매니아에 덤벙거리는 형 발리. 두 캐릭터의 대비는 전형적인 데칼코마니(decalcomanie)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데칼코마니란 원래 종이를 반으로 접어 대칭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인데, 서사에서는 성격이나 역할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도 서로를 완성시키는 두 인물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안은 아빠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발리는 어렴풋한 기억이라도 있습니다. 그 차이 하나가 두 형제가 같은 상실을 얼마나 다르게 껴안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감독이 정말 '보여주기'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부재를 설명하는 대사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이안이 아빠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둔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즉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장면 하나로 그 공백의 무게를 전부 전달합니다. 아빠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들인데 실제로는 형이 곁에서 다 채워줬다는 사실을 이안이 뒤늦게 깨달을 때, 저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이건 연출이 아니라 감독 본인이 직접 통과한 감정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사는 이처럼 창작자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하는 작업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픽사 공식 사이트에서도 댄 스캔론 감독이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본인 가족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가 영화 전체의 신뢰도를 다르게 만듭니다.
감동 포인트: 마법보다 강한 것이 결국 무엇인지
이 영화의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맥거핀(MacGuffin)이라는 서사 장치가 영리하게 활용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핵심 소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물의 내면 변화가 진짜 주제임을 감추는 장치를 말합니다. 온워드에서 '아빠의 완전한 소환'이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두 형제는 마법 보석을 찾아 모험을 떠나지만, 관객이 진짜 따라가게 되는 건 이안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영화 중반부, 이안이 절벽 끝에서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못하겠다고 망설이는 이안에게 형 발리가 한마디 던집니다. "준비는 평생 안 돼. 끼어들어." 저는 이 대사에서 예상 밖으로 크게 찔렸습니다. 행동보다 준비를 더 오래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 패턴이 제 안에도 있거든요. 픽사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찔릴 줄은 몰랐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이안은 그토록 원하던 아빠와의 만남을 눈앞에 두고도 형에게 그 기회를 넘깁니다. 아빠를 기억하는 형이 먼저 만나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희생이어서가 아닙니다. 이안이 버킷 리스트를 돌아보며 형이 이미 아빠의 역할을 다 해왔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희생이 억지가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가 가장 잘 해낸 부분이 바로 이 설계입니다.
온워드가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감정 이입(empathy)을 서사 구조 안에 정밀하게 설계한 결과입니다. 감정 이입이란 타인의 감정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심리적 반응인데, 픽사는 이를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유도합니다. 다리만 소환된 아빠가 아들들 옆에서 말없이 존재하는 장면들, 그 어색하고도 따뜻한 무성(silent) 연기가 대사 열 줄보다 훨씬 더 깊이 박힙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울게 될 거라고 예상한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동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빠와 함께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형이 이미 모두 채워줬다는 역설적 깨달음
- 다리만 소환된 아빠의 무성 연기가 전하는 비언어적 유대감
- 이안이 마법을 익히는 과정이 곧 자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과 일치하는 구조
- 클라이맥스에서 희생이 억지가 아닌 필연처럼 느껴지는 서사 설계
픽사 연출: 기술과 감정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가
픽사의 연출력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색채, 조명, 구도, 인물 배치 등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온워드는 이 부분에서 정말 세심합니다. 요정이 바이크를 타고 다니고 유니콘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뉴 룸하우스'라는 도시 세계관이, 처음에는 유머처럼 보이다가 나중엔 마법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힙니다.
색채 설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안의 세계는 초반에 파스텔 톤의 무채색에 가깝고, 모험이 진행될수록 마법의 빛깔인 선명한 파란색과 보라색이 늘어납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안이 마법을 익히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세상이 점점 색을 찾아가는 시각적 서사입니다. 처음 이 부분을 알아챘을 때 제가 직접 몇 장면을 되돌려 확인했습니다. 역시 맞았습니다.
음악 역시 완성도가 높습니다.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마이클 대나, 제프 대나 형제가 맡은 스코어는 켈틱(Celtic) 선율을 기반으로 합니다. 켈틱 음악이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켈트 문화권 특유의 민속 음악 스타일을 말하는데, 고대 마법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두 형제가 거대한 저주에 맞서는 장면에 이 선율이 깔릴 때, 그 감각은 극장 사운드 시스템이 없어도 충분히 소름이 돋을 만큼 강합니다.
픽사가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받은 건 현대성과 판타지를 결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순히 판타지 세계관을 현대 도시에 입힌 게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마법을 대체한 세상'이라는 전제가 이야기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이 전제 덕분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즉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질문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버라이어티(Variety)의 리뷰에서도 이 세계관 설계를 픽사의 가장 영리한 선택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온워드는 형제 자매가 있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꼭 형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있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영화가 그 감각을 되살려 줄 것입니다. 가볍게 틀었다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어지는 영화, 그게 온워드입니다. 혹시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절반은 이미 전달된 셈입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jjiehn/222006548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