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한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하이틴 영화의 고전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유쾌한 틴무비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꺼내 보니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단순한 학교 파벌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추앙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되는 과정. 생각보다 불편할 만큼 현실적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가 뭘까요
하이틴 영화에는 어느 정도 공식이 있습니다. 평범한 듯 예쁜 여주인공, 처음부터 반해 있던 남주, 갑작스러운 변신 장면. <퀸카로 살아남는 법>도 이 공식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만 유독 21세기의 고전(classic)으로 불리는 걸까요.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그때는 레지나 조지가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다시 보니 레지나가 불편하게 느껴진 건 그녀가 낯설어서가 아니라, 어딘가 익숙해서였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권력으로 삼고, 승인과 칭찬으로 주변을 통제하려는 심리.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충동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이 영화의 영어 원제는 'Mean Girls'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이 지목하는 건 레지나만이 아닙니다. 케이디도, 제니스도, 심지어 관객인 저도 포함됩니다. 모두가 크고 작은 의미에서 'Mean Girl'이라는 것. 이 불편한 진실을 유쾌하게 포장해낸 것이 이 영화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나르시시즘, 욕망이 거울 앞에 서는 순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이상화하고, 타인을 자기 확인의 도구로 삼는 심리적 경향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강렬한 내면의 요구입니다. 영화 속 케이디가 레지나 무리에 스며들면서 점점 이 상태에 가까워집니다.
처음 케이디는 복수를 위해 '스파이'로 잠입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경계가 흐려집니다. 레지나가 지나가며 던지는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환해지고, 자신이 파벌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에 중독됩니다. 이 과정이 무섭도록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저도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적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불편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측정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케이디가 좋아하는 남학생을 두고 레지나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불씨가 나르시시즘으로 번집니다. 비교에서 시작된 욕망이 스스로를 잠식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 'Burn Book'은 이 욕망의 결정체입니다. Burn Book이란 전교생의 비밀과 험담을 적어둔 레지나의 노트를 말합니다. 이 노트가 공개되는 순간 드러나는 건, 레지나만의 잔인함이 아닙니다.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해온 모든 학생들의 민낯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용감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선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추앙받고 싶다는 욕망, 솔직히 인정해도 될까요
추앙(推仰)이란 어떤 대상을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는 뜻입니다. 살면서 이 단어를 직접 써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감각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영화는 그 욕망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다룹니다.
흥미로운 건 제니스라는 캐릭터입니다. 제니스는 영화 초반 레지나 무리를 'mean girls'라고 규정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니스 역시 케이디를 자신의 복수 계획에 끌어들이며 타인을 도구로 씁니다. 표면적으로는 파벌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이지만, 내면에서는 레지나가 누리는 것들을 선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니스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미워하는 대상을 사실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 그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 주변에서도 꽤 자주 보이는 모습이니까요.
심리학자 찰스 쿨리(Charles Cooley)가 제안한 거울 자아 이론(Looking-Glass Self)은 이를 잘 설명합니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이론입니다. 레지나의 승인 한 마디에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장면이 밈(meme)이 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그 표정을 비웃으면서도 어딘가 공감하기 때문에 계속 회자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나쁜 걸까요. 자기수용(self-acceptance)이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태도를 말합니다. 관심과 인정을 원하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기수용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평가에 덜 휘둘리고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가 알려주는 건강한 사회생활의 조건
영화의 결말은 하이틴 공식대로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이 결말이 단순한 화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레지나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운동에 쏟아붓고 교내 운동선수가 됩니다. 케이디는 수학경시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끕니다. 각자가 타인의 승인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간 것입니다. 저는 이 결말이 꽤 솔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완벽한 화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에서요.
이 영화가 건강한 사회생활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내가 질투하는 대상을 들여다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보입니다. 욕망을 부정하기보다 먼저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 추앙받고 싶은 마음과 추앙하고 싶은 마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두 가지 모두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입니다.
- 취약성(vulnerability)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진짜 관계입니다. 완벽해 보여야 유지되는 관계는 언제든 Burn Book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 타인의 승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나르시시즘은, 자기수용이 결여될 때 자라납니다.
케이디가 봄 여왕 왕관을 한 조각씩 부수어 나누어주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권력의 상징을 나눈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상징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사회생활의 기술을 다룬 책이나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20년 된 하이틴 영화 한 편이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더 정직하게 이 문제를 건드린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욕망을 솔직하게 바라볼 용기가 있는가. 아직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한 번만 보셨다면, 다시 꺼내 보시기를 권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저는 두 번째 감상에서야 제니스의 표정을 제대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게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charmcoconut/224169080706 https://www.apa.org/pubs/journals/p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