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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시리즈, 마크다시, 로맨틱코미디)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져야 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브리짓 존스 시리즈를 다시 꺼내 본 날 밤, 그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2001년 1편부터 2016년 3편까지 15년을 훌쩍 넘긴 이 시리즈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하지 않은 채로 사랑받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12년 만에 돌아온 브리짓,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2016년에 개봉했습니다. 2004년 2편 이후 무려 12년 만의 귀환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시리즈가 너무 오래 쉬고 돌아오면 분위기가 어긋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는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영화는 브리짓이 43세 생일을 홀로 자축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편에서 그녀가 'All by Myself'를 부르며 소파에 늘어져 있던 그 오프닝을 그대로 오마주(homage)한 구성입니다. 오마주란 원작이나 선배 작품에 경의를 표하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브리짓의 체형이 조금 슬림해졌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싱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크 다시와 연인 관계였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헤어졌고, 마크 다시는 다른 여성과 결혼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브리짓은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 날 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쿨하게 작별 인사도 없이 돌아선 브리짓. 그런데 며칠 뒤 조카의 세례식 자리에서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마크 다시와 재회하게 됩니다. 이혼 소송 중이었던 마크 다시는 브리짓을 보자마자 예전의 그 눈빛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어색하고 설레는 재회 장면을 보면서 저는 10년 전에 1편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게 이 시리즈의 무서운 점입니다.

세례식 이후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밤을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몇 주 후, 브리짓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아이의 아버지가 여행에서 만난 잭인지, 마크 다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서사적 긴장감(narrative tension)이 여기서 폭발합니다. 서사적 긴장감이란 이야기 안에서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독자나 관객을 붙잡아두는 힘을 말합니다. 브리짓이 두 남자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예상과 달리 두 사람 모두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 장면 하나가 영화의 코미디 감각을 단번에 살려줍니다.

마크 다시 대 잭, 궁합 8% 대 97%의 진짜 의미

영화 속에서 잭은 사랑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인물입니다. 알고리즘(algorithm)을 기반으로 브리짓과의 궁합이 97%라고 계산해 보여주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이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는 계산 방식을 뜻합니다. 반면 마크 다시와의 궁합은 겨우 8%. 잭은 이 수치를 들이밀며 "10년을 만나도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면 그게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에서 실제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잭의 논리가 틀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맞아서 불편했습니다. 데이터와 통계로 감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현대 연애 문화에서 이미 낯설지 않습니다. 실제로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 이용자의 상당수가 알고리즘 매칭 결과를 의사 결정의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잭의 캐릭터가 지금 시대에 더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브리짓은 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수학이 아니에요." 이 한 줄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합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이 내면적으로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궤적을 말합니다. 3편에서 브리짓의 아크는 결국 "조건과 계산이 아니라 감정의 진실을 따르는 선택"으로 완성됩니다. 97%의 궁합표를 내미는 잭보다, 서툴고 무뚝뚝하지만 브리짓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조용히 곁에 있었던 마크 다시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임신한 브리짓에게 두 남자가 각각 어떻게 대했는지를 비교해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잭은 따뜻하고 적극적이었지만 관계를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마크 다시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브리짓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기보다 그냥 옆에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던 건 사실입니다. 잭이 꽤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럼에도 결국 마크 다시였으면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 잭(패트릭 뎀시 분): 궁합 97%, 데이터 기반 접근, 적극적이고 다정하지만 감정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음
  2. 마크 다시(콜린 퍼스 분): 궁합 8%,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하지만 브리짓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인물
  3.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분):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결국 감정의 진실을 따르는 선택을 함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문법, 브리짓 존스가 다시 쓴 방식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 줄여서 로코는 장르 자체의 공식이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자주 받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란 사랑을 중심 소재로 삼되,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는 영화 장르를 뜻합니다.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완벽한 외모의 여주인공, 예측 가능한 오해와 화해, 비 내리는 고백 장면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이 공식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납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주인공 브리짓의 설정입니다. 그녀는 날씬하지도, 완벽하게 세련되지도 않습니다. 술을 마시다 실수하고, 직장에서 엉뚱한 말을 하고, 연애도 번번이 엉망이 됩니다. 그럼에도 관객이 브리짓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일기에 그대로 적어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이 솔직함이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샤론 마구이어 감독이 1편에서 선보인 미장센(mise-en-scène) 기법은 3편에서도 이어집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을 통해 감정과 주제를 전달하는 영화적 언어를 말합니다. 브리짓의 좁고 어수선한 아파트와 마크 다시의 정돈된 공간이 대비를 이루는 방식, 눈 내리는 거리에서의 재회 장면에서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이 점점 좁혀지는 카메라 워크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단순한 로코 이상의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3편의 엔딩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암시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여운이 1편 눈 내리는 거리의 피날레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제 경험상 이건 비교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은 로맨틱 코미디 역사에서 손꼽히는 클라이맥스 중 하나이니까요. 영국영화협회(BFI)의 '위대한 영화' 목록에서도 영국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대표작으로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12년이라는 공백을 딛고 돌아와 시리즈의 품격을 유지한 작품입니다. 완벽함을 강요받는 일상에 지쳤을 때, 혹은 사랑의 조건을 너무 많이 따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꺼내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