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딱히 뭘 볼지 고민하다가 자극적인 스릴러 말고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런 날에 결국 2016년작 영화 '형'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조정석과 도경수가 이복 형제를 연기한 이 작품, 처음엔 그냥 웃자고 틀었다가 결말에서 제대로 울었습니다.
영화 '형'은 어떤 작품인가
영화 '형'(영문 제목 MY ANNOYING BROTHER)은 권수경 감독이 연출하고 2016년 11월 23일에 개봉한 코미디·드라마 장르 작품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찾아오는 구조로, 한국형 휴먼 코미디(Human Comedy)의 전형적인 서사를 따릅니다. 휴먼 코미디란 단순한 웃음을 넘어 인간의 관계와 감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르를 뜻합니다.
주연은 조정석과 엑소 출신 배우 도경수(D.O.)입니다. 조정석은 사기 전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형 '두식' 역을, 도경수는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지만 경기 중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는 동생 '두영' 역을 맡았습니다. 박신혜가 두영의 전 코치 수현 역으로 출연해 두 형제의 관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 개봉 당시 흥행 성적도 화제였는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형'은 개봉 첫 주부터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진입하며 총 관객 수 350만 명을 넘겼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코미디와 드라마를 모두 잡은 작품이 이 정도 흥행을 거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원동력이 결국 두 배우의 케미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정석·도경수 케미, 직접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개봉 전부터 "조정석과 아이돌 출신이 형제를 연기한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꽤 있었습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할까요. 저도 솔직히 처음엔 도경수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배우의 연기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리액션 연기(Reaction Acting)가 있습니다. 리액션 연기란 상대 배우의 대사나 행동에 반응하는 순간의 자연스러움으로, 이것이 어색하면 전체 장면의 몰입감이 깨집니다. 도경수는 시각장애인이 된 두영을 연기하며 눈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비워내는 방식으로 리액션 연기를 완성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습니다. 조정석 특유의 능청스러운 애드리브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응하는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조정석의 캐릭터 두식은 한마디로 '속이 깊은 사기꾼'입니다. 처음엔 가석방을 위해 동생 곁에 온 것이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서서히 형으로서의 본능이 올라오는 과정을 조정석은 과장 없이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조정석이 보여준 코미디 타이밍과 감정 전환의 낙차가, 제가 지금껏 본 한국 영화 배우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의 진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영화의 서사 구조를 분석해 보면, 전형적인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를 따릅니다.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겪는 내면의 변화 곡선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결핍 → 갈등 → 성장의 3단계로 설명됩니다. 두식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결핍된 인물에서 출발하고, 두영은 꿈을 잃은 상실감에서 출발합니다. 둘 다 결핍을 안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초반부는 코미디이면서도 꽤 씁쓸한 맛이 납니다.
둘이 부딪히며 쌓아가는 장면들, 예를 들어 두식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으려고 두영의 비위를 맞추다가 결국 티격태격하게 되는 에피소드 등은,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는 소재인데도 두 배우의 연기 덕분에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설정이 현실적이냐"고 묻는다면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감정의 진정성은 충분히 납득이 됐습니다.
후반부 두식의 시한부 판정은 극단적인 전개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한부 판정 이후 두식이 동생 두영을 위해 집안 곳곳의 위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고 개조하는 장면들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이건 연출의 힘이었다고 봅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최루성 영화와 다른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억지로 슬픔을 유발하는 장치 대신, 인물 관계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감동을 끌어냅니다.
- 코미디 장면과 감동 장면이 분리되지 않고 같은 캐릭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 시각장애인 유도 선수라는 소재를 실제 패럴림픽(Paralympic) 정신과 연결해 현실감을 더합니다. 패럴림픽이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로, 올림픽과 같은 개최지에서 열립니다.
- 두 주인공 모두 결말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 캐릭터 성장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패럴림픽과 시각장애인 유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지금 봐도 추천할 수 있는가
개봉한 지 약 9년이 지난 작품입니다. 그 사이 한국 영화 시장은 크게 바뀌었고, 관객의 눈높이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을 지금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충분히 추천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선이 다소 예측 가능하다는 점, 후반부의 전개가 빠르게 달려간다는 점은 아쉽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 아쉬움은 마지막 경기 장면이 시작되면 금방 사라집니다.
영화의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억눌려 있던 감정이 극적 경험을 통해 해소되는 심리적 현상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저는 '형'의 마지막 경기 장면에서 그것을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두영이 경기장에서 "나 형 있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대사 자체가 단순한데도 그 전까지 쌓인 모든 서사가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경수의 연기를 두고 "아이돌치고는 잘한다"는 식의 평가가 가끔 보이는데, 저는 그 수식어가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 도경수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아이돌 기준'이 아니라 배우 자체로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수준이었습니다. 조정석이라는 베테랑 배우와 스크린을 나눠 가지면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그냥 웃다가 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형'은 꽤 좋은 선택입니다. 지나치게 어렵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균형을 잘 잡은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주말 저녁에 한 번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중간에 멈추기 어려운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