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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의 너 (학교폭력, 입시경쟁, 용의자X)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8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요. 그런데 거실 불 다 끄고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저는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학교 폭력과 입시 압박이라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 한 소녀와 한 소년의 이야기 안에 이렇게 깊이 박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원제가 담은 의미, 그리고 두 사람의 첫 만남

영화의 원제는 '少年的你'입니다. 직역하면 '소년 때의 너'인데, 여기서 '소년(少年)'은 남자아이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닙니다. 중국어에서 소년은 10대 청소년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그러니 제목의 뜻을 제대로 살리려면 '10대 시절의 너' 정도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이라 틀릴 수 있지만, 감독이 관객 모두에게 "당신의 그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한 여학생의 투신 자살로 시작됩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사진을 찍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첸니엔만 조용히 걸어가 쓰러진 아이 위에 체육복 상의를 덮어줍니다. 그 장면 하나로 저는 이 영화가 무언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그날 이후 죽은 아이를 괴롭히던 가해자들은 첸니엔을 새 표적으로 삼습니다. 계단에서 밀고, 음식에 이물질을 섞고, 의자에 뭔가를 뿌려놓는 식의 괴롭힘이 이어집니다.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정학이 내려지고, 정학이 끝나면 보복이 시작됩니다. 이 악순환의 구조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인적 드문 골목에서 여러 명에게 맞고 있는 소년 베이를 발견한 첸니엔이 경찰에 신고합니다. 덕분에 같이 붙잡혀 곤욕을 치르게 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시작이었습니다.

학교폭력 처리 시스템의 민낯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도 있었고, 성실한 경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누군가는 죽었습니다. 개인의 선의가 아무리 충만해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아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입니다. 2차 피해란 피해자가 폭력 자체가 아닌, 주변의 반응이나 잘못된 처리 과정에서 추가로 입는 심리적·사회적 상처를 뜻합니다. 영화 속 담임 교사가 짐을 싸며 첸니엔에게 "너는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해주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첸니엔은 신고 때문에 선생님마저 떠났다는 죄책감을 고스란히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국내 학교폭력 실태를 보면 2023년 교육부 조사 기준 피해 응답률이 1.9%로, 전체 학생 수로 환산하면 결코 작지 않은 숫자입니다(출처: 교육부). 문제는 신고 이후입니다. 학교가 사건을 축소하거나 조용히 화해시키려는 경향은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교장 입장에서는 언론이나 교육청 조사가 두렵고, 학교 이미지가 걱정되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덮을수록 폭력은 더 깊이 뿌리내립니다.

제가 보기엔 학교폭력 처리의 핵심 원칙은 단순합니다.

  1. 피해자 보호가 가해자 처벌보다 먼저다. 필요하면 즉각 분리(강제 전학, 접근 금지 등)해야 한다.
  2.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명확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이 정도는 괜찮다"는 신호를 준다.
  3.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발언이나 태도는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4. 사건이 드러났을 때 "이제라도 찾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봐줘야 한다는 논리를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도 똑같이 어립니다. 그 나이에 입은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는, 어른이 된 뒤에야 더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입시 경쟁이라는 이름의 폭력

영화에는 고3 선서 대회 장면이 나옵니다. 수백 명의 학생이 운동장에 도열해 구호를 외칩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선생님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저는 찬란한 미래를 쟁취하겠습니다." 처음엔 그냥 중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겠거니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첸니엔이 가해자들의 계획에 동의한다는 사실은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다는데, 그 계획에 함께 참여한다는 건 냉정하게 보면 이기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첸니엔을 무조건 나쁘게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빚을 지고 도망 다니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동네에서, 그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가 북경대 입학이었으니까요. 그 집착이 생겨난 토양은 학교가 만들었습니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한 번의 시험으로 진로가 갈리는 구조를 고부담 평가(high-stakes testing)라고 부릅니다. 고부담 평가란 단 한 번의 시험 결과가 개인의 진학, 취업, 사회적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평가 방식을 뜻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학교가 입시 성적을 실적(performance indicator)으로 삼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실적이란 기업이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인데, 교육 기관에 그 잣대를 그대로 가져오면 교사는 점수를 올리는 사람이 되고, 학생은 점수를 생산하는 자원이 됩니다.

공교육(public education)이란 모든 청소년이 각자의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교육 체계입니다. 그러나 교문 앞에 "우리 학교 SKY 합격 OO명"이라는 현수막이 붙는 순간, 합격하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스스로를 패배자로 느낍니다. 이것이 구조가 만드는 폭력입니다. 주먹을 쓰지 않아도 사람을 짓누를 수 있습니다.

OECD의 교육 지표 보고서(Education at a Glance)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수준은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합니다(출처: OECD Education at a Glance).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한, 첸니엔 같은 아이들은 계속 만들어질 것입니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닮은 후반부, 그리고 연출의 힘

영화 후반부는 구조적으로 일본 영화 '용의자 X의 헌신'과 유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용의자가 되고, 수사가 자신에게 향하도록 증거를 조작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이시가미가 혼자 모든 것을 계획하고 야스코는 결말까지 그 사실을 모릅니다. 반면 이 영화에서는 베이와 첸니엔이 사전에 함께 말을 맞춥니다. 그 차이가 첸니엔이라는 인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동시에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증국상 감독의 연출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클로즈업(close-up shot)의 활용입니다. 클로즈업이란 피사체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화면 가득 채우는 촬영 기법으로, 인물의 내면 감정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주동우와 이양천새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두 배우가 대사 없이 눈빛과 미세한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취조실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주고받는 장면은 그 절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자막을 읽지 않아도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