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살아있는데 캐릭터의 매력이 세월을 못 이겼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잭 스패로우 얘기다.
1편은 2003년 개봉 당시 고등학생 때 극장에서 봤고, 5편은 2017년 개봉이니 딱 14년 차이가 난다. 3편 이후로 시리즈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4편은 건너뛰었는데, 5편은 개봉한다길래 그냥 궁금해서 봤다. 살라자르라는 새 빌런의 비주얼은 인상적이었고, 초반에 배가 반으로 갈라지며 은행 건물째로 마을을 끌고 가는 장면은 스케일이 어이없을 정도로 커서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정작 기대했던 잭 스패로우 특유의 매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사 타이밍이나 애드리브 느낌의 유머가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않았다. 1편에서는 즉흥적이고 영리한 느낌이 강했는데, 5편에서는 캐릭터의 유행어나 특징적인 제스처를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다. 배우도 캐릭터도 세월을 그대로 안고 돌아온 셈인데, 그 간극이 오히려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 글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스펙터클과, 반대로 세월을 못 이긴 캐릭터의 매력 사이 그 온도차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캐리비안 5편, 기대 낮추고 봤더니
3편 이후로 시리즈가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4편은 아예 건너뛰었다. 그러다 5편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대 없이 그냥 궁금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안 본 사람이라면 아마 "시리즈 후반부니까 그냥 우려먹기식 속편이겠지" 하고 넘겨짚기 쉬울 것 같다. 사실 나도 비슷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이미 3편에서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한 풀 꺾인 상태였고, 4편도 평이 애매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를 최대한 낮춘 채 관람을 시작했다.
그런데 낮은 기대치 덕분이었는지, 몇몇 장면들은 오히려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살라자르라는 새 빌런의 비주얼은 인상적이었다. 유령 선원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방식이 그동안 시리즈에서 봐온 초자연적 존재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초반에 배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은행 건물째로 마을을 끌고 가는 장면도 스케일이 어이없을 정도로 커서 그냥 웃으면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정작 이 시리즈를 이끌어온 핵심,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펙터클 자체는 여전히 살아있는데, 그 스펙터클을 관통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할 캐릭터가 예전의 생기를 잃은 느낌이었다. 기대를 낮추고 봤는데도 이 아쉬움만큼은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다.
은행 건물째 끌려가는 장면, "이런 것도 되네?"
5편에서 가장 순수하게 즐겁게 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초반부 은행 시퀀스였다. 배 두 척이 아예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은행 건물을 통째로 끌고 다니는데, 그 무모한 스케일을 보는 순간 "이런 것도 되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토리상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그냥 이 시리즈가 늘 해왔던 방식대로,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최대한 화려하게 밀어붙이는 순수한 스펙터클이었다.
건물이 통째로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는 그 과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역시 캐리비안답다" 하고 웃으면서 즐길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허무맹랑한 설정이지만, 오히려 그 무모함이 시리즈 특유의 과장된 유쾌함을 제대로 살린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육지 위를 끌려다니고, 건물이 무너지고, 그 와중에도 캐릭터들은 계속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이어가는데, 그 모든 게 한 데 뭉쳐서 만들어내는 혼돈 자체가 재밌었다.
이 장면이 특히 반가웠던 이유는, 5편 전체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순수하게 즐거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을 계속 느끼면서 보던 와중에, 이 장면만큼은 그런 고민 없이 그냥 스크린 속 혼돈을 즐기면 되는 시간이었다. 스토리나 캐릭터의 완성도를 따지지 않고, 그저 "얼마나 더 크고 무모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만 집중한 장면이 오히려 이 시리즈의 본질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14년 간극, 잭 스패로우에서 느껴진 씁쓸함
1편은 2003년, 고등학생 때 극장에서 봤다. 5편은 2017년 개봉이니 딱 14년의 시간차가 난다. 그 세월의 간극을 스크린 속 잭 스패로우를 보면서 고스란히 느꼈다.
가장 크게 다가온 차이는 유머의 결이었다. 1편에서는 대사 하나, 상황을 빠져나가는 방식 하나하나가 즉흥적이고 영리한 느낌이 강했다. 캐릭터가 그 순간을 진짜로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5편에서는 그 즉흥성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대신 캐릭터의 유행어나 특징적인 제스처를 반복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 이건 예전 그 캐릭터 느낌을 재현하려는 시도구나" 싶으면서도, 그 자연스러움만큼은 확실히 예전만 못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배우도 나이가 들었고, 캐릭터를 처음 만들어냈을 때의 그 신선함을 14년 뒤에 똑같이 재현하기는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 그 낯선 매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옅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스크린으로 확인하니 씁쓸함이 밀려왔다는 점이다.
14년이라는 시간이 관객인 나에게도, 스크린 속 캐릭터에게도 똑같이 흘렀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때 극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 신선한 충격을, 이제는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하면서 예전과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게 묘하게 서글펐다. 캐릭터의 매력이 세월을 못 이긴 게 아니라, 어쩌면 그 캐릭터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의 나 자신도 함께 지나가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편은 케이블에서 또 보게 되는데, 5편은
1편은 지금도 케이블 TV에서 나오면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결말도 대사도 다 아는데 습관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애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5편은 그 정도의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살라자르 등장 장면이나 은행 시퀀스 정도는 유튜브 클립으로 다시 찾아볼 수는 있어도, 영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챙겨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스펙터클 몇 장면만 좋게 기억에 남고, 전체적으로는 한 번 보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차이가 결국 1편과 5편 사이에 놓인 진짜 격차라고 생각한다. 스펙터클의 완성도나 액션의 화려함으로만 따지면 5편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기술적으로는 더 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 그 애정의 크기는 완전히 다르다. 결국 영화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은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라는 걸 이 차이를 통해 새삼 느꼈다.
그래서인지 5편을 보고 나서 4편도 챙겨보려는 마음은 오히려 더 안 생겼다. 원래도 4편을 건너뛴 채로 5편을 봤는데, 5편에서 느낀 아쉬움이 시리즈 전체에 대한 흥미를 더 식게 만든 셈이다. 순서를 채워야겠다는 의무감도 딱히 들지 않았다. 나중에 시리즈를 처음부터 정주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4편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지금 당장 찾아볼 마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