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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3 리뷰 명불허전 타락춤

 


MJ한테 손 들려다 스파이더맨이 스스로 놀라 멈추는 순간 소름 끼쳤다. 스파이더맨3를 다시 봤는데, 이 장면 하나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이모 피터 밈으로만 소비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다시 들여다보니 그 안에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스파이더맨3 타락, 춤보다 이 장면이 진짜였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그 유명한 길거리 춤 장면이다. 검은 슈트를 입은 피터가 갑자기 느끼하게 걸으면서 여자들한테 눈웃음 치고, 피아노 치면서 거들먹거리는 그 장면. 인터넷에서 밈으로 워낙 많이 퍼져서 이 영화 하면 자동으로 그 장면부터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근데 다시 보면서 느낀 건, 그 장면은 사실 타락을 코믹하게 과장해서 보여주려던 시도였을 뿐, 진짜 소름 끼치는 타락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거다.

진짜 무서웠던 건 피터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어린 동료를 아무렇지 않게 밀쳐서 다치게 하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장면이었다. 평소의 피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인데, 그걸 저지르고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걸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게 그냥 웃긴 변신이 아니라 진짜 한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코미디로 소비되는 춤 장면과 달리, 이 장면은 아무런 웃음기 없이 그저 서늘하게 지나간다.

근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건 MJ한테 손을 들려다 스스로 놀라서 멈추는 그 순간이었다. 심비오트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데, 그 손을 본인이 보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 그 짧은 몇 초 안에 분노, 충격, 자기혐오가 다 압축돼서 담겨 있었다. 이게 소름 끼쳤던 이유는, 심비오트가 그냥 없던 폭력성을 새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피터 안에 원래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감정을 끄집어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힘이나 어떤 계기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 억눌려 있던 부분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타락 서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춤 장면보다 이 두 장면을 먼저 꼽는다. 밈으로 소비되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뒤에, 사실은 훨씬 진지하고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는 걸 다시 보면서 새삼 느꼈다.

힘이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걸 끄집어낸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제일 오래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이거였다. 심비오트가 피터를 다른 사람으로 완전히 바꿔놓은 게 아니라, 원래 피터 안에 있었지만 억눌려 있던 감정들을 그냥 표면으로 끌어올린 것뿐이라는 생각. 이게 단순히 영화 볼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상이 아니라, 다 보고 나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정리된 생각이었다.

평소의 피터는 항상 참는 캐릭터였다. 삼촌의 죽음 이후로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왔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화가 나도 그걸 표출하기보다는 삼키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근데 심비오트를 입으면서 그 억눌림이 풀려버린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 동료를 밀치고, 오만하게 굴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한테 손을 들어 올리는 것까지. 이게 무서웠던 이유는 단순히 '검은 슈트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는 클리셰 때문이 아니라, 그 검은 슈트가 오히려 일종의 필터를 벗겨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심,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분노나 이기심 같은 감정들이, 그 필터가 사라지자마자 여과 없이 튀어나온 거다.

MJ한테 손을 들려다 스스로 놀라서 멈추는 장면이 특히 이 생각을 확실하게 만들어줬다. 그 손을 들어 올린 게 심비오트의 조종이었다면, 피터는 그 순간에 놀랄 필요가 없었을 거다. 근데 그가 자기 손을 보고 스스로 충격받는다는 건, 그 행동의 뿌리가 완전히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자기 안 어딘가에서 나온 거라는 걸 본인도 직감했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심비오트는 방아쇠였을 뿐, 총알은 원래 피터 안에 장전되어 있었던 거다.

이 생각에 도달하고 나니까 이 영화가 단순히 '악한 존재에 씌어서 나쁜 짓을 하는 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로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이 영화를 밈으로만 소비하기에는 아까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해리와 피터, 화해 직후 잃는 타이밍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축은 사실 심비오트나 샌드맨보다도 해리와 피터의 관계였다. 둘은 원래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피터 탓으로 오해하면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다. 그 뒤로 몇 편에 걸쳐 해리는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피터를 적으로 돌리고, 심지어 뉴 고블린이 되어서 직접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한때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 오해 하나로 이렇게까지 서로를 파괴하려 드는 걸 보면서, 우정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새삼 느껴졌다.

근데 결국 해리가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는 계기로 진실을 알게 되고, 피터를 죽이려던 마음을 완전히 접고 오히려 그를 도와서 함께 싸우러 오는 장면에서 감정이 확 몰아쳤다. 그 짧은 순간에 담긴 게 너무 많았다. 그동안 쌓였던 오해, 배신감, 서로에 대한 상처, 그리고 그걸 다 뛰어넘는 진짜 우정까지. 해리가 다시 예전의 그 다정한 친구 모습으로 돌아와서 피터 옆에 서는 순간,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그 화해의 기쁨이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그 전투 안에서 해리가 목숨을 걸고 피터를 구하다가 죽는다. 이 타이밍이 진짜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겨우 화해했는데, 다시 예전처럼 친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전에 잃어버리는 거다. 화해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이 거의 동시에 밀려오니까 감정을 정리할 틈도 없이 그냥 무너졌다. 차라리 화해하지 않고 죽었다면 슬프긴 해도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것 같은데, 진심을 확인한 직후에 잃으니까 그 여운이 훨씬 오래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이모 피터 밈 때문에 그냥 우스꽝스러운 망작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아쉽다. 실제로는 타락과 용서, 그리고 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아픈 우정 이야기가 그 안에 진지하게 담겨 있는데, 그 부분이 밈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이모 피터 밈 때문에 망작으로만 아는데, 실제로는 타락·용서·우정이 깊게 담겨 있다